2016/06/21 14:21

누나

누나는 일곱살에 죽었다. 그 때 나는 여섯살이었다. 요새 누나 생각이 많이 난다. 어디서부터 내 기억이고 어디서부터 만들어지고 전해듣고 가공된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태어날 때부터 어떠한 의료상의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가졌다고 했다. 제대로 걷거나 말할 수 없었고, 툭하면 병원에 입원했어야 한다고 했다. 누나의 병원 때문에 어려운 형편에 자동차를 샀다고 들었다. 누나가 병원을 오갈 때 탔을 그 차를 타고 난 여행을 다녔지만 말이다.

말할 수 없었고, 제대로 일어설 수도 없었고, 그렇기에 아마도 어느 누구에게도 죄를 짓지 못했을 누나는 아마도 무고한 영혼이었을것이다. 7년동안 고통스러워했을테고 어떠한 희망이나 즐거움 없이, 성장 없이 그렇게 살다간 누나의 삶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삶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마주한 현실이었을 것이고, 여섯살이 되기까지 언제나 내 곁에 있는 현실이었겠지만, 그리고 내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테지만, 거의 기억나지 않는 안개같은 시절로 떠오른다.

누나를 떠올리며 나는 내 부모도 함께 떠올린다. 이십대 중반의 신혼부부였던 그들에게 누나의 탄생은 얼마나 축복이었을것이며,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된 어떤,,,,, 고난은 그들에게 어떠한 괴로움이었을 것이고, 누나의 죽음은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자그마치 칠년의 세월동안, 어떠한 기분으로 그들은 살았을까. 건강했고, 튼튼했고, 강하고 똑똑해 보이는, 그래야만 했던, 철없는 둘째를 보면서 아마도 버텼을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내가 너무도 밉다.

내 부모는 장남이며 장녀다. 그들에겐 터놓고 의지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요새 할머니와 같이 살며 느끼는 것이지만, 아마도 우리 부모에게는 그들의 부모가 별다른 심정적 도움이 됐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상처를 더했을거라고, 난 요새 내 할머니를 마주하며 생각하곤 한다. 우리 부모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뎠을까.

아버지는 나와 내동생을 대학에 보낸 후에,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을 공부하셔서 목사가 되셨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어느 섬에 가셔서 묵묵히 사역을 하시고 계신다. 지난 설에, 아버지는 어떠한 의미와 즐거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가 내가 물었을 때, 아버지는 세상에는 미련이 없다고 답했다. 그것이 얼마만큼의 진심인지는 내가 알 턱이 없겠지만, 나는 그러한 부모의 삶이 너무도 이해가 될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그들에게는 신밖에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커서 이런 저런 책으로 심리학등을 접하면서 나는 6세까지의 삶이 나라는 인간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물론 6이라는것은 숫자에 불과하겠지만, 내 인생을 생각할 때 누나의 삶은, 누나의 곁에서 보낸 6년의 인생의 첫 시간은, 결코 생략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은 나의 기억 이면에, 의식 아래에 자리잡고 있겠지만 말이다.

그 시절의 난 누나가 입원할 때마다 여기저기 친척집에 맡겨졌다고 한다. 안 그래도 집안의 장손이었던 나는 덕분에 친척들의 관심을 두루 받으며 자랐다. 부모에게서 아마도 조금은 적게 받았을, 관심과 애정을 말이다. 내 부모는 내게 관심과 사랑을 듬뿍 주려고 노력했지만, 그리고 나는 그들의 노력과 정성이 지금 돌아보면 너무도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아마도 어린시절의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누나가 죽고 일년 뒤 태어난 여동생은 어릴때부터 약했고, 툭하면 입원하거나 다쳤기에, 아마도 나는 또 부모의 관심을 뺏겼다고 느꼈을 것 같다.

엄마를 떠올리면 나는 언제나 누나의 기일무렵이 되면 지독한 우울에 빠졌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당연한 슬픔이었고 애도와 공감이 필요했겠으나, 엄마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그 곁에서 나는 왠지 모를 불쾌감에 엄마에게 짜증을 내거나 심지어 화를 내거나 했었다. 어느정도 머리가 굵고 나서는 엄마를 어설프게 위로하거나 심지어 훈계하기도 했었다. 그런 기억을 묻어두었었는데, 감옥에서 그러한 내 과거가 다 떠올라 뒤늦게 혼자 엉엉 울었다. 아버지는 내 기억에선 무심한 사람이었는데, 아버지의 엄마인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그의 성장과정을 이해하면서, 또 그시절 가장으로서 묵묵하게 견뎠을 그를 생각하면서 아버지의 무심함 또한 그의 어떤 자기보호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나는 그 후의 20년이 넘는 내 삶을 돌아보면서, 가급적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항상 어떤 말장난이나 튀는 생각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고 싶어했던 내가 어떤 면에선 애정결핍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또 내가 많이 좋아했고 영향을 받았던 여성들은 다들 남동생이 있는 사람이었고, 내겐 누나의 결핍이 그만큼 컸던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대체로 밝고 친절한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기억되지만 아마도 그 이면엔 언제나 깊은 우울과 죽음에 대한, 혹은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와는 다른 조건을 가진, 작고 약한 여성에 대한 혹은 약자에 대한 어떤 관심이나 호감 또한, 그리고 그런 것들로 인해 바뀐, 혹은 바뀐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러한 쪽으로 흘렀던 내 삶 또한 그런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친구들은 언제나 날 보며 놀라곤 했다. 내일이 시험인데도, 혹은 취업할 나이이고, 대학원에 갈 나이이고, 즉 미래를 위해 뭔가 노력해야 할 시점에 난 언제나 당장 하고 싶은걸 하고 싶어했고, 했다. 나는 언제나 안정된 먼 미래보다는 당장의 기쁨과 의미를 좇았던 것 같다. 이것을 모두 누나와 연관된 것이라 돌리기엔 과도한 합리화일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나는 그랬다.

어릴 때부터 내겐 언제나 죽음이 곁에 있었다. 인생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이었고, 먼 미래는, 내게는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게 내일이 없을것처럼 하루살이로 살아왔던 나였는데, 그렇게 살기에 30년은 너무 벅찼던 것 같다. 오래 준비하고 노력해서 꾸준히 뭔가를 하고 아주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를 맛보고 천천히 누리기에는, 나는 너무 짧은 호흡으로 살아왔고, 그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다. 이런 내가 변할 수 있을까, 절망과 함께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7년밖에 살지 못했던 누나의 삶을 떠올리면, 서른이면 너무도 과분하게, 누나가 겪어보지 못했을 것들을 너무도 많이 누리고 살아온 내 삶이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닥쳐온 끝 앞에서는 의연하지 못한,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날 보면서 복잡한 심정이 된다.

다시, 또, 종종, 인생의 시작지점으로 되돌아가 누나의 삶과, 부모의 삶과, 내 삶을 처음부터 되돌려본다. 언제쯤이면 이 모든게 받아들여질까, 상실과 끝 앞에서 의연해질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이만하면 많이 살았는데도 아직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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