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19 19:15

이제, 일년.

작년 2,3월쯤부터였을 것이다. 구정 즈음에 내가 너무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스스로가 걱정되어 좀 쉽고 즐거운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던 것이 기억나고 그 약효가 별로 지속되지 않았던게 기억나는 것으로 봐서 말이다. 아마 3월쯤 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는데, 서서히 먹을 것을 줄여나가기 시작한게 아마도 돌아보면 결정적인 하강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곡기를 끊어야겠다! 하고 끊은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먹는게 하나하나 관찰되었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건 먹을 가치가 없게 느껴졌다. 내가 군것질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느끼고 구치소에서 먹을 수 있는 온갖 간식에 손을 안대기 시작했다. 하루에 세끼는 너무 많은 것 같았고, 먹는 밥의 양을 줄이기 시작했다. 우울감과 무력감에 빠져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그 때 내 생각으로는 탄수화물섭취를 줄여야 한다고 느껴졌다. 백미가 거북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배식때마다 밥을 받지 않았다.(지금도 백미는 거의 안먹는다) 아마 거의 한두달 정도는 쌀을 거의 먹지 않았던 것 같다.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이 다 과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배식을 받으면 반찬을 다 물에 씻어 먹었다. 소화가 점점 안되고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았고 먹는 양은 점점 줄었다. 그럴 수록 움직임은 줄었고, 악순환이 시작됐다. 어느 순간 내가 하루에 먹는 양은 아주 적어졌는데, 나름대로 그 때는 그 과정과정이 '합리적'이거나 당연한 것으로 스스로 느꼈고 적게 먹는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나중에 심리학쪽 책을 읽어보면서 그 당시의 내가 자기혐오나 자기학대로 인한 일종의 거식증 증상이었다고 느껴졌다. 돌이키면 뼈아프다.

매주 몸무게를 측정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기억하던 몸무게에서 8키로 가량이 빠졌다. 매일 보는 아저씨들이 내 얼굴이 반쪽이 됐다고 했다. 그 때부터였다. 진작부터 아파오던 목과 어깨는 물론이고 허리와 팔꿈치 손목, 무릎, 발목까지, 온몸의 관절이 아프기 시작하고, 뚝뚝 소리가 났다. 그 전까지 건강하던 것도 아니었다. 긴 겨울을 바닥만 따뜻한 방에서 거의 앉아서 나면서, 나는 목, 어깨 ,허리가 결리고 쑤시는 것은 물론이고, 전립선 쪽의 통증으로 이미 몇 달간 의무과를 들락날락하며 진통제와 항생제를 먹던 상태였다. 우울과 무기력으로 한동안 운동도 거의 안하고 앉아있었으니 장이나 위 상태도 좋을리 만무했다. 나는 어릴때부터 장이 안좋았는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변을 보곤 하는데, 그 당시에 한동안 혈변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던지라 급작스런 체중감소와 통증을 동반한 관절 이상이 시작됐을때, 나는 암에 걸렸다는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병원에 갈 수는 없었다.

젊은 애가 살이 빠졌으니, 주변의 친하게 지내던 아저씨들이 내게 열심히 먹을것을 줬다. 그것은 과자거나 라면이거나 빵 같은 것들이거나 혹은 배식에서 나오는 음식들을 다양하게 변형한 것들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받는 족족 변기통에 버렸다. 당시 내게 입에 들어가는 것들은 대부분 쓰레기처럼 느껴졌고,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준 사람들이 대번에 알 수 있으니 변기에 버렸다. 통큰 아저씨들은 과자도 몇박스씩, 빵도 십 수개씩 줬기에 변기가 자꾸 막혀서, 나는 음식들을 찢어서 버리거나 씹어서 버렸다. (어떤 이는 음식을 아깝게 왜 버리냐고, 필요한 사람에게 줄수 없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겟지만, 당시 내가 있던 사동에는 대부분 범털들이 있었어서 음식을 필요로 하거나 내가 준 걸 받을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 준 빵이나 라면같은 것을 일일이 씹어서 변기통에 뱉으면서 죄책감과, 음식에 대한 혐오감과,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과, 내가 처한 상황의 비참함에 울기도 하고 이유를 알 수 없이 치밀어오르는 화를 삭히며 보냈던 순간들은 내게 여전히 선명하고, 떠올리면 아직도 처참한 기분이다.

살이 다시 쪄야 하는 것은 명백할터인데, 목으로 음식이 넘어가도록 날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못하니 괴롭기 짝이 없었다. 나는 한평생 체중과 식욕이 많은 편에 속했고, 그래서 식욕이 사라진다는 것, 살이 빠져서 몸에 안좋을 수 있다는 것은 모두 내게 당혹스럽게 다가왔다. 감옥에 있을 때도 그랬었는데, 누군가 뭐가 맛있다고 좋아하거나, 내게 권하면 까닭을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그러면 더더욱 먹히지 않게 되는데, 그럴때마다 미안하면서도 괴롭다.

당시 몇 달은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우울감과 좌절감, 냉소와 허무함속에서 지냈고, 그 와중에서도 항상 감시받고 있으며 재판이 언제 끝날지, 언제 이감을 가야 할지 몰라 하루하루 긴장한 상태로 지냈으며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학대를 하며 또 하루하루 심해지는 통증과 몸의 이상증상에 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짓눌리며 지냈다. 그 때 난 어마어마하게 예민했고 신경질적이었으며 충동적이었고, 그러한 상태로 내가 느끼는 우울과 좌절과 냉소와 허무와 긴장과 공포와 불안과 분노와 절규를 애인에게 쏟아냈다. 지금 여기 적은 것들보다 훨씬 더 추했고, 더 비참했으며 더 길었고, 덜 정돈됐으며 더 거친 글들이 매일매일 손글씨로 반복됐다. 거기에는 상당한 분량의 언어폭력이 동반됐고, 아마 그 편지를 받는 사람 또한 무력감과 긴장감과 불안과 분노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사람은 결국 작년 이맘 때쯤 날 떠났다. 그것으로서 내가 가장 신뢰하던 사람에게서 신뢰를 잃었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미미하게나마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나는 여전히 당시의 내가 이해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인정되지도, 납득되지도, 용서되지도 화해되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부끄럽고 추하며, 꾸짖게 되고, 한심하게 느껴지고, 후회스럽고 밉다. 스스로가 그러한데, 애인이든 누구든 누가 날 이해하고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스스로 용서받지 못하고 있는데, 누가 위로해준들, 그것이 위로될 수 있을까. 비난과 조롱은 물론이겠지만, 섣부른 위로가 날 더 괴롭게 만드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점점 말의 쓸모를 잃는다. 아마 이것은 죽는날까지 내가 혼자 지고 가야 할 짐일것인데, 너무도 버겁게 느껴진다.

일년이 넘게 지났다. 여전히 내게 식욕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함께 먹을 때 종종 기쁘게 열심히 먹으려 하지만 혼자가 되면 다시 또 음식들이 쓰레기처럼 보인다. 살 의지는 없는데, 죽을 용기도 없어서, 몇 달간 꾸역꾸역 열심히 먹었다. 꾸역꾸역 먹으면 체중은 조금 늘었는데, 그렇다고 통증이 사라지진 않고, 그러다 다시 먹을 의지를 잃으면 다시 체중은 줄기 시작한다. 소화력은 점점 떨어지고, 그래도 먹긴 해야 하니까 뭔가 들어갈 수 있을 땐 항상 입으로 뭔가 넣으려고 하니, 항상 체한 기분으로 살고 있다. 먹기 싫은걸 먹으면 더 소화가 안되고 심하면 두통이나 복통으로 하루이틀 괴로워하니, 그래도 조금이나마 덜 싫은걸 먹으려고 노력한다. 먹고 사는게 힘들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데, 나는 대체 왜 이러고 있나 생각하면 여러가지 복합적으로 괴롭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통증은 계속 심해진다. 나름대로 몸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통증이 왜 심해지는지, 어떻게 하면 좋아지는지 알 수 없는데, 하루를 보내고 누워서 어제보다 더 심해진 통증을 느끼면, 아침에 일어나 여지없이 찾아오는 통증을 느끼면 좌절감에 죽음을 생각한다. 젊으니까 좋아질거야, 쉬면 좋아질거야..라는 말에 희망을 걸었던 것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죽을 것을 생각하면 물밀듯이 밀려오는 회한과 막연한 두려움 허무함에, 차마 죽지 못하고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고 있다. 하지만 지난 1년 3-4개월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찾아오는 통증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도 꾸준히 안좋아지는 몸을 생각하면, 내게 다시 건강한 삶은 오지 않을 거라는 좌절이 나를 엄습한다. 도대체 왜 계속 몸이 나빠지는지 억울함과 두려움에 대상이 없는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무엇을 하든 몸이 아파오니, 미약한 즐거움과 기쁨을 느낄일도, 즐겁지 않더라도 그냥 할 수 있는 일들도 점점 줄어간다.

지난 1년도 내겐 너무나도 괴로운 시간이었고, 지난 1년간 너무나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고, 제일 중요하게는 살아야 할 이유를 잃었다. 앞으로의 며칠도 깝깝하다. 그런데 또 다른 1년, 앞으로의 수 년, 혹은 남은 십수년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혹은 점점 더 나빠지며,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잃으며(잃을 사람도 거의 남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점점 더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며 괴롭히고, 추한 모습을 내보이며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감옥을 나올 때만 하더라도 부끄럽게 생각된 내 지난 삶을 늬우치고 만회하며, 갚으며 살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7-8개월이 지났지만 만회하기는 커녕 부끄러운 일들, 갚을 일들, 괴로운 일들이 점점 더 늘어간다. 그나마 약간이라도 좋은 모습으로 기억될 수도 있었을 과거마저 다 무너트리고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그나마 좀 더 덜 추접하게 죽는 준비를 하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까 생각하며 몇 시간씩 생각하다 잠이 들면, 악몽과 통증에 잠을 깬다. 그러한 일상이 반복된다. 아, 이게 사는건가.

작년 6월 이맘 때, 모든 것이 산산히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 멍한 눈빛으로 옥죄여 오는 불안을 못견디며, 편지로 이별을 통보받으면서도 이 모든게 꿈이길 바라며 지내던 내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때의 내게, 지금 네게 일어난 것은 모두 현실이며 앞으로도 쭉, 건강도/의욕도/관계도/우울증도, 그 어떤 것도 좋아지지 않고, 나빠질 일만 남았다고 말해준다면, 그 때 난 감히 살려고 했을까? 일년후의 나는 지금의 나를 또 어떻게 돌아볼까. 이대로 가면 끝이 어디일지 너무도 뻔해서, 하지만 언제일지는 모르겠어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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