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5/18 02:02

어떤 현실에 의미를 부여하는가 - <신촌좀비만화>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삶과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종교와 사랑, 가족, 우정 등의 개념들을 만들어왔고 이러한 가치들은 시대를 따라 변형되고 부침하며 인간들의 믿음의 대상이 되어 왔다. 사람들은 의미에 따라 살고 의미에 따라 죽는다. 인간은 의미를 위해 죽기도 하며 의미를 잃어 죽기도 한다. 시대가 변한다는것은 많은 숫자의 인간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대상과 양식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신촌좀비만화>는 그러한 면에서 시대변화를 보여주는 세편의 영화인 것 같다(사실 세번째는 잘 모르겠다) 세 영화는 각각 SNS, 좀비, 2D만화라는 '비현실'로 간주되는 현실을 소재로 나름의 세계를 구축한다. 이 영화들의 주인공에게 이 '비현실'의 현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부여의 대상이 된다. 기존의 영화들이 이러한 '가상'의 세계를 '비현실'로만 혹은 일탈로서만, 혹은 비유와 상징으로서만 다뤘다면 <신촌좀비만화>는 이러한 '비현실'을 '현실'에 영향력을 가지는 현실로서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과 경합하는 현실이라는 설정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양상을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젠 세상으로 나가겠어!

비젠이라는 캐릭터는 사실 흔하게 묘사됐던 캐릭터이고, 현실보다 카톡, 사령, 혹은 여우비를 더 중요시하는 방장이나 자신의 비주얼과 고통을 온라인에 전시하는 여우비는 우리(1020) 주변에 널리 있음직한 캐릭터이다. 영화는 이러한 캐릭터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나아가 이러한 캐릭터들이 어우러져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개연성있게 보여주는데 성공한다. 사람을 죽이고 그 시체와 찍은 사진을 전시하기까지 하는 비젠은 비윤리적 인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현실에서으 비루함을 자신이 속한 SNS세계에서 표현하고, 그 '사회'에서의 정의와 윤리를,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여우비'를 위해 다시 현실속에서 구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결코 게임중독이나 스마트폰 중독으로 현실감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구축한 다른 현실의 사회를 위해 실제로 심장이 뛰는 사람을 죽인 것, 즉 다른 현실감을 가진 사람이다. 여우비를 위해 선생님의 손에 화상을 입히고,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으면 불안해지는 방장 또한 그러하다. 여우비, 방장, 비젠이 왜 사람을 죽였는가를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들이 숨쉬며 살아가는 현실의 무게감이 이들이 톡하며 살아가는 현실에 비해 너무도 가볍고 무의미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실제로 사람은 죽었고 채팅방의 사람들은 방을 나갔으며 방장은 여우비를 삭제했다. 하지만, 이 살인 이후, 이들은 어떤 현실에서 살아갈 것인가. 이 영화가 성장영화라면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적당히 취업하고 적당히 반성하며 사회에 통합되어가겠지만 나는 이들의 미래가 그렇지 않을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청소년기의 특성에 따른 어떤 흔한 양상의 사람을 보여준다기보다는 특정한 시대에 감각을 형성한 사람의 행동양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성장이 아닌 시대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다.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좀비>에서 주인공들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당신'이다. 이 영화에서 세계는 좀비의 현실과 정상인의 현실이 경합한다. 좀비가 자본주의에서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의미한다는 것은 아마도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클리셰일 것이고 주인공들이 부르짖는 사랑의 수사도 너무도 클리셰해서 비슷한 과잉적 연출이라고 나는 읽었다. 영화 막바지에서 로맨틱한 순간에 여주가 남주의 목을 깨물면서 같이 좀비가 되고 착취하던 자들의 살을 족발처럼 물어뜯는 장면을 세계가 망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보여줄때 나는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과잉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다면 어떤 과잉인가. 

주인공은 좀비와 정상인의 경계에서 왔다갔다 한다. 여주와 남주는 번갈아가며 사랑을 부르짖는데 망해가는 세계에서 상대를 위해 목숨을 버리려는 것으로 자신의 진정성을 보여주려한다. 좀비가 몰려올 때 남자가 여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 어찌 된지 모르겠지만 남녀의 입장이 뒤바뀐 후에 여성이 보여주는 헌신 등을 보면 나는 이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해서 그 사랑에 의미를 부여한다기 보다는 이 망해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그렇기에 이 사람들은 그 의미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기꺼이 좀비가 되는 좀비의 현실을 선택한다. 바로 이 '당신'이 그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데 문제는 이 '당신'은 선택된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떠한 대안도 없기에 강요된 것 같다는 것이다. 

나로호가 발사됐습니다. 

세번째 영화에서 나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 영화의 주된 '비현실적'요소는 2D만화였는데 이 '비현실'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 경합하지 못했다. 나로호를 쏘아올리는 시대에 2d 만화에 빠져있는 주인공에게 만화는 통속적인 사랑의 이미지를 강화하거나, 만화방 오빠에 대한 열망을 불어일으키거나, 나중에 절주변의 숲에서 길을 잃었을때 동생을 버린 수민에게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거나 하는 식으로 현실에 패배하거나, 현실과 조화하는 식으로 기능한다. 이 영화는 그래서 예쁘고 아름답게 보였을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고 믿었)던 소녀가 어른의 세계로 합류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영화로 읽혔다. <신촌>에서는 SNS세계와 현실세계의 거리감을 <좀비>에서는 인간과 좀비의 거리감을 드러내는 데 활용됐던 3D가 <만화>에서는 어떻게 기능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세편의 영화는 SNS, 좀비, 2D만화라는 세가지 비현실이 현실과 경합하고 비유되고 통합되는 과정을 나름의 특성을 갖고 보여주는 영화였다. 나는 <신촌>에 높은 점수를 보고 싶고 <좀비>도 어느 수준에서 관객의 말을 이끌어낸다고 보이지만 <만화>는 글쎄,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를 보면서, 또 보고나서 걸어오면서 나눈 얘기들을 간단하게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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