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1 17:13

<설탕과 권력> 서가

<설탕과 권력>

설탕은 18세기즈음까지는 상류층만 먹는 사치품 중 하나였다. 물론 이것은 설탕이 생산되는 더운 나라나 세계시장의 상층부를 점햇던 유럽에서나 그랬다. 조선에서는 왕실에서나 약으로만 먹었고 일본제국의 식민지가 돼서야 조금씩 보통사람들도 설탕을 먹기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조금씩 싹틀 때 설탕는 항상 당시의 최강국이 생산과 소비를 좌지우지 했다. 귀족들은 설탕으로 자신의 부와 권력을 뽐냈고 설탕으로 빚는 예술품이자 먹을거리인 아기자기한 장식, 간식들은 그 상징이었다. 오늘날 케잌위에 놓여져 있는 촌스러운 장식들이 그 흔적이 아닐까. 

설탕은 자본주의 성장과 뗄 수 없는 상품이다. 하지만 자유임금노동이 특징인 자본주의체제와 어울리지 않게도 설탕은 노예의 노동으로 생산되어 자본가들의 배를 불렸다. 설탕을 유럽으로 사오기 위해 수많은 아프리카인들과 몰락한 인디언들이 북미의 '서인도'제도로 팔려나갔다. 설탕이 사치품에서 생필품으로 지위가 내려가면서 자본가들은 설탕으로 부를 드러내기보다는 설탕을 팔아서 부를 쌓았다.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이지만 한국의 자본주의와 함께 성장한 삼성의 부도 어느 부분 설탕을 먹고 자랐다.

설탕은 약으로 쓰였다. 옛 책들을 보면 설탕을 먹으면 병이 나았다고 한다. 영양이 부족해서 생긴 병이였는지, 달콤한 설탕을 맛보고 싶어 생긴 병인지는 알수 없다. 설탕과 금과 진주를 갈아서 눈에 불어 넣으면 안질이 낫는다고도 했다. 아, 이 강한 믿음이여! 설탕을 먹는 것이 죄악인가 아닌가하는 논쟁도 있었다. 중세의 위대한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설탕은 '다른 음식'들과 달리 먹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논쟁을 정리했다. 현대인이 즐기는 '기호'식품인 알코올, 차, 커피, 초콜릿등은 한때는 불경한 음식이기도 했다. 이것은 물론 이러한 것들이 아랍권으로부터 전해져 들어와서 생긴 반-이슬람 감정때문으로도 보인다.(중세의 진지한 신학자들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술은 금하면서 커피는 즐기는 모습을 보면 의아해 할지도 모른다)

예수는 사람이 먹는 것으로 더러워지지 않고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더럽다 했지만 오래도록 그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은 성스러운 음식과 더러운 음식을 구분하려 했다. 옛 사람들은 입으로 뭐 하나가 들어가고 마는데도 신성함을 느끼고 죄악을 느끼며 상징을 부여했다는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저마다 다른 기준들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의 종교는 성스러운 음식과 불경한 음식을 구분하지 않는가. 이는 성과 속의 구분이기도 했지만 한정된 자원과 먹거리, 그리고 부족한 의학지식을 갖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자원을 분배하고 질서를 잡는 세속법이기도 했다. 

여행하면서 인도의 한 티벳난민촌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인도의 승려들은 채식식단의 식사를 했고 같은 자리에서 티벳 승려들은 육식 식단의 식사를 했다. 하기사 티벳같은 고산지대에서 고기를 식단에서 뺄수는 없었을 것이다. 태국의 승려들은 금하는 고기가 있었지만 현실에서 먹을리는 없는 고기(용고기, 뱀고기 등등)였고 실제로는 공양으로 받은것은 고기든 뭐든 다 먹는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한국불교는 왜 채식을 할까 하고 생각해본적도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리고 계몽된 세속인들은 먹는것에서 성과 속을 찾지 않는다. 제사를 지낸다든가 절이나 교회에서 이따금씩 규칙들이 있지만 말이다.(서양음식을 서양인처럼 먹는것도 규칙처럼 지켜지기도 한다) 우리는 제삿상에 뭐가 올라가고 성경에서 무슨 음식을 금하느냐보다는 어떤 음식이 열량이 높고 어떤 식단이 살을 빼게 해주는지에 더 박식하다. 한 때 약이었던 설탕은 이제는 다이어트의 독이 됐다. 어떤 한 종류의 음식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과분한 음식섭취가 '착한' 몸매를 망치는 적이고 건강을 망치는 불량식품은 무려 4대악이다. 척결! 우리시대의 신은 아마도 건강과 장수, 아름다운 몸인가보다. 아, 연아느님, 의느님?!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