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1 17:10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스포 있을듯)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스포 있을듯)

화면은 다큐멘터리처럼 담담했지만 보는 내내 긴박감과 어떤 감흥이 있었다. 처음에 주어졌던 30일의 시간이 하루하루 줄어들수록 긴장이 생겼고 이후 연장되는 시간만큼 영화도, 삶도 치열하게 느껴졌다. 

다른 흔한 영화와 달리 주인공은 영웅이 아니다. 지구를 구하거나 남을 돕기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이거나 헌신적인 사람이 아니다. 헐리우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족을 위해 목숨을 거는' 아빠/남편도 아니다. 오히려 영화에서 그는 악한에 가깝게 보인다. 문란하고, 남을 속이고, 불법을 자행하며 마초에 호모포비아다. 자신이 감염된 hiv를 남에게 옮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 친구의 아버지에게 약을 보내는 장면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몇 안되는 그의 윤리다. 미묘한 흔들림, 그리고 그 흔들림으로부터 나오는 인간적인 모습들이 군데군데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그의 치열함은 하루라도 목숨을 연장하고 돈을 벌고자 하는 의지로부터 나온다. 즉, 자신의 목숨을 위한 이기심이 투쟁의 동력이다. 

이것은 어느정도 의도된 바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지만 주인공은 실제로는 호모포비아나 사기꾼이나 마초가 아니었다. 실제의 그는 깔끔하고 예의바른, 그리고 아마도 양성애자였을거라고 생전의 그의 인터뷰어들이나 동료들은 말했다고 한다. 호모포비아였다가 에이즈에 걸린 후부터 다양한 성소수자들을 접하고 자신의 병과 편견을 극복한 감동적인 스토리는 '극적'인 연출이었다. 사소한 몇가지가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친 않다. 사람들은 왠지 몰라도 위악적인 인물이 무언가 진정성을 보일때, 혹은 변화할 때 감동을 느끼는 법. 이러한 변용은 에이즈가 게이들만 걸리는 병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미국의 에이즈 운동이 미국사회에서 (비교적)성공적으로 확장되며 수용된 사실을 드러내는 것도 같다. '겨울왕국'에 동성애 코드가 있다는 이야기만으로 논란이 되는 이나라에서 이 영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화에선 두개의 의학이 대립한다.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의학과 인간의 삶을 유지시키는 의학이다. 오늘날 서구의학을 지배하는 것은 전자다. 질병이 있고 질병의 원인을 발견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거나 증상을 덮어버린다. 완전히 설명되지 않고, 치료되지 않는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과정은 의학의 관심대상 밖으로 보인다. 두개의 힘 또한 대립한다. 의학을 통제하여 부를 축적하려는 제약회사와 그를 돕는 국가가 있고 맞은편엔 삶에의 의지로 희망을 붙잡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는 집요하게 두개의 의학과 두갈래의 힘 틈새를 비집는다. 

로데오를 즐기고 텍사스의 선인장을 선물하는 카우보이는 총을 들고 사막을 질주하는 대신 국경을 넘고, 밀수를 하고, 변호사를 고용하고, 벌금을 물고, 소송을 하고, 시위를 한다. 살기위한 불법, 살기위한 권리를 말한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다. 광우병 파동에 정권이 뒤집힐 뻔 하고, 각종 바이러스가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하는 결벽의 나라다. 미래에는, 또 어떤 질병이 이 작고 폐쇄적인 고밀도의 나라를 위협할까. 공포는 어떻게 우리를 끌고갈까. 

면역은 기본적으로 적과 나를 구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 구분이 모호해지는 것, 완벽한 이론도 해결책도 없다는 점에서 에이즈는 다른 어떤 병들보다도 포스트적이다. 이 시대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 그저 삶을 연장시켜가며 이약 저약 주사해보며 먹어보며 '칵테일 요법'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30일을 선고받은 주인공, 그러니까 가족도 애인도 자식도 돈도 신앙도 친구도 없는 그에게 죽지 못할 이유는, 그토록 내일이 절실한 이유는 뭐였을까. 그가 처음부터 7년이라는 시간을 선고받았더라면 그는 그렇게 치열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왜 그 짧은 몇초를 버텨내려고 미친 소에 올라타 밧줄을 부여잡다가 모래바닥에 나뒹구는 것일까. 영화는 어찌됐든 소에서 떨어지기 전에 엔딩을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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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는 여행 : 요즘 영화 2014-03-21 17:12:25 #

    ... 적인 공포에 가까운듯 <지구를 지켜라> 재밌는 영화였다. 미래판 '홀리데이'랄까.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스포 있을듯) <인타임>3/19 <300>3/20 <광해> ... more

덧글

  • umma55 2014/03/22 09:41 # 답글

    감상문이 정말 훌륭합니다. 같은 영화를 봤는데도 전 요렇게 못쓰거든요.
    근간에 본 아주 좋은 영화엿습니다.
  • 들깨 2014/04/14 22:46 #

    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해주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마침 제가 관심있던 주제여서 좋게 읽어줄만한 글이 된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4/04/14 22: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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