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02 12:24

기독교와 병역거부

10월 26일에 있었던 '신앙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제목으로 열렸던 워크샵을 다녀와서 느낀점을 페북에 적었었다. 페북에 올렸던 글 중에 길이와 내용을 고려해 블로그에 포스팅하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을 옮겨놓고 있다. 블로그에 차라리 즉각즉각 쓰는게 더 낫다는 생각이지만 페북의 편리성에 매번 페북에 생각을 쏟아놓게 된다. 특유의 정리안됨은 즉각성 덕분일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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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역거부를 고민해오던 지난 4-5년간, 가장 큰 벽 중에 하나는 기독교였다. 딱히 '교회'라는 조직에 뭔가를 의존하는 사람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그것은 내 개인적 선택에 대한 벽이기도 했고, 병역거부인정과 대체복무라는 제도나 현실에 있어서도 그랬다. 

- 모태신앙으로 자랐고 어릴적 교회에서 놀며 자랐다. 집안 친척중에 목사님, 전도사님, 장로님도 많았고 무엇보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자라났다. 내가 갖고 있는 신앙은 나의 삶의 태도에 영향을 많이 끼쳤다.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보다는 내가 믿는 신의 뜻을 생각해보면서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했었다. 신실하고 정석대로의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나는 내가 만들었던 나름의 윤리적 기준을 끊임없이 점검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완벽하지 않았겠지만..

- 교회공동체는 어느 측면 내게 편안함을 줬다. 나는 기독교가 갖고 있는 문화적 특성들에 익숙하다. 술과 담배를 권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교회라는 공간이 편했다. 적어도 드러내놓고 이해관계를 따지거나 폭력적으로 굴지 않으려 하는 교회공간이 편한것도 있었다. 

-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셨을수도 있겠지만 처음 아빠에게 병역거부를 말했을 때 아빠가 동의하지 않음을 표하시며 근거로 들었던 것은 성경말씀이었다. 물론 이미 나는 여러 시각에서 성경을 읽었었고 아빠의 답변에 대한 내 답변도 준비돼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간에 나는 나름의 인생에서의 큰 손해를 감수하고 꽤 오랜 진통과 고민을 담아서 꺼냈던 나름의 윤리적 결단에서 아빠가 간단하게 꺼내든 반대패가 성경이라는 것은 지금도 맘에 걸린다. 

- 아빠를 탓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의 일반적인 시민이라면, 한국의 표준적인 기독교인이라면 상식처럼 갖고 있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어쩌면 그정도였던게 차라리 나은 정도였다. 내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랬고, 내가 자라온 기독교 사회라는 곳도 그랬다. 아빠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사회가 있었고, 그렇게 국가에 대해, 군대에 대해,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에 대해 함부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다. 

- 오늘 병역거부 고민을 시작하고 활동을 하기도 하면서 거의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기독교'라는 이름을 걸고 병역거부를 얘기하는 자리가 있었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이 서울까지 오셔서 열심히 네시간동안 집중해서 들으셨다. 어쨌든간에 기독교라는 집단 내에서, 신학대 교수라는 사람중에, 목사라는 사람중에, 병역거부를 지지하고 신앙의 관점에서 병역거부를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완전히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겠지만 의미있는 자리였다 적어도 내겐. 

- 독일에서 오신 신학 교수 Enns 교수의 말이 계속 남는다. 그는 메노나이트(평화주의전통을 가진 기독교 교단) 집안에서 자랐고 18세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다. 2차대전 후의 독일은 계속해서 군사주의를 조금씩 약화시켜왔고 작년엔 징집을 폐지하기도 했는데, 내게는 그래서 독일이 굉장히 평화적인 나라였을 거라는(나치 이후에, 그에 대한 반성으로)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서도 병역거부자는 비겁한 남자라거나,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병역거부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가 병역거부를 하기 위해서는 판사 4명에 의해 이런 저런 질문을 받으며 자신의 양심을 설명하고 입증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한다. 자신이 공격받는 상황에서도 총을 들지 않을것인가, 가족이 위험에 처해도 총을 들지 않을 것인가 등등. 어찌됐건 그는 그 대답들에 답을 했고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 받아 대체복무를 하게 됐다고 한다. 

- 재밌는건, 판결이 끝난 후에 판사 한명이 따라와서 개인적으로 "당신의 가족이 위협에 처해도 총을 들지 않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는 것. 집요하게도 느껴지고 성실하게도 느껴지는데. 어쨌든 엔즈 교수는 이 질문이 자신을 평생 따라왔다고 한다. 단순히 저 질문에 어떤 답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직면한 폭력에 대해, 또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온 폭력에 대해, 전쟁과 군대에 대해 평생 그 질문을 안고 간다는 측면에서 그러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 판사때문인지는 몰라도, 엔즈교수에게 그 폭력에 대한 태도는 평생의 화두였던것이다. 

- 당장 몇주 후면 병역거부를 '결정'하는 나이지만 내게도 저 질문은 버겁다. 저 질문은 사실 좋은 질문이 아니라고도 생각하고 저 질문으로 병역거부의 당락을 결정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이 부분에 대해선 나중에 따로 정리하려 한다), 어쨌든 저 질문에 답을 하고 실제로 자신의 행동으로 증명하는건 '정말로 저 상황이 되어보아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쪽의 판단이라도 나는 그 사람을 윤리적으로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 단, 그 사람이 숙고했다면. 그리고 진정으로 고민스러워 했다면 말이다. 

- 독일에서 온 목사님을 보며 어떤 뉴스가 떠올랐다. 아프간의 파병한게 국가의 이익때문이었다고 말한 것 때문에 사임했던 독일의 대통령의 소식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3305124) 그 기사를 읽으면서 아찔하고 부러운 느낌이 들었다. 국가의 이익때문에 파병했다고 말해서 사임한 대통령이 있는 나라가 있는데 대통령이 앞장서서 국익때문에 파병해야 한다고 말하는 나라에 나는 살고 있었다. 그 대통령은 그 나라의 역사상 가장 진보적이고 인간적인 대통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했다. 이익을 위해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우리에게 부재한 것 같았었다. 오늘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적어도 독일에서는 지난 수십년을 거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재판관에게 자신의 윤리적 태도를 묻고 답하는 시간이 있었음을 알았다. 두 국가에는 여러가지 상황적, 역사적 차이가 있었겠지만 그 질문의 역할도 크지 않았을까?

-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악의적인 질문이 아니라 실제적인 많은 윤리적 딜레마들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전쟁에 대해, 군대에 대해. 군대 내의 다양한 상황에 대해. 일상의 다양한 상황들과 다양한 입장들에 대해. 폭력과 무력에 대한 다양한 상황에서의 윤리적 태도에 대해서. 딱 떨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뒤따라오는 준엄한 윤리적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불편하더라도 안고 가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병역거부자뿐 아니라 군대를 가는, 그리고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따라와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질문을 굳이 누군가에게 해야 한다면, 실제로 무력을 손에 쥐고 사용할 수 있는 군인될 자에게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교회 안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사랑과 평화를 누구보다 많이 말하며, 윤리와 정의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는게 교회 아닌가. 병역거부에 대해서 얘기만 꺼내면 국가안보와, 반공과, 정의로운 전쟁에 대해서 얘기한다. 얘기도 못꺼내게, 그것은 이단의 문제로만 치부한다. 하지만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전쟁과 군대를 옹호한다면 그들이 복무하는 국가가, 그들이 참여하는 전쟁이, 그들을 부리는 군대가 정의로운지, 평화를 위한 최선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하지 않을까. 정의롭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최선이 아닌 부분이 있다면 잡고 늘어져야 하지 않을까. 

- 중요한건 답이 아니다. 나는 적어도 개신교라면 개인에게 답을 주는것이 종교의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불안해하고 애쓰고 서로 선의를 갖고 논하되 최후의 결정은 개인의 심연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존중해주고 나름의 뜻으로 안는것이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닦아주고 어깨를 쳐주는것이 교회의 할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군대에 가기로 결정하든, 군대에 가지 않기로 결정하든, 다양한 맥락에서의 윤리적 고민을 최후의 심연까지 껴안았던 사람은 보다 더 윤리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지 않을까. 군대에 가서든, 일상의 순간에서든, 전장의 한복판에서든. 

- 여전히 아빠는 내 병역거부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빠가 군인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군인이 되는걸 선택하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4-5년 전 거의 몇초만에 군대에 당연히 가야 한다고 옹호하던 아빠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적어도 전쟁이라는것이 군대라는것이 얼마나 많은 해악을 낳아왓는지 숙고하며 알아보셨고 피로 얼룩진 기독교의 역사에서 전쟁에 대한 다양한 입장과 논쟁이 있었음을 아신다.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군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서도 아빠의 위치에서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와의 토론 과정 때문일지라도 군인이 된다는 것이 더 정의로울 수 있도록 군인이 되어서도, 군대의 일원으로서도 노력하실것이라 본다. 여전히 나와 아빠의 답은 다르지만 누군가 신앙을 기반으로 병역을 거부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은 아빠에게 그러한 질문들을 던져왔고 그것이 아빠와 나의 거리를 좁혀왔다고 본다. 

- 적어도 내가 병역거부를 고민하며 지켜본 5년동안, 교회는 그 문제에 대해서 숙고하지 않았다. 평화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병역거부자를 외면하고, 그것은 이단의 문제로만 치부했다. 기독교의 역사와 교리 안에서도 군대와 전쟁을 대하는 여러가지 태도와 입장이 있고, 그것이 우리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더욱 복잡하고 애매한 상황을 연출해내는 것을 외면하고 반공과 국가안보라는 정답만을 외쳐왔다. 기독교인들 중에도 군대가 불편하고 군사훈련이 마음에 걸리고 전쟁이 안타까운 자들이 왜 없었을까. 다만 그들은 속으로만 고통스러워하거나 자신이 틀렸다고 자책하고 소리죽였을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너무도 나약하거나 삐딱한 혹은 시험들린 것이었을테니 더욱 기도하고 순종하라고 명받았을 것이다.

- 당장 대체복무가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에 한국의 주류 교회가 대체복무를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대놓고 반대나 안하면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개신교 내에서 병역거부도 하나의 길이라고, 하나의 선택이라고 말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속으로 고민하고 있을 이들이 외롭지 않길 바랐다. 네가 고민하는 길이 틀린게 아니라는 것, 충분히 고민할만 하다는 것을 조금 더 많은 이들이 얘기해주길 바랐다.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 군대에 가는 이들도 군대에 가기 전까지, 군대에 가서도 다양한 상황에서의 윤리적 태도에 대해 질문받기를 원한다. 폭력과, 전쟁과, 군대와, 정의에 대해서 우리는 보다 다양한 상황에서의 나의 태도를 상상해보며 끊임없이 질문해볼 수 있기를, 그리고 교회가 단순히 돈벌어서 은혜받고 성공하란 얘기만 하는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에 대해서 고민해보라는 얘기를 권할 수 있기를 바랐다. 

- 그러니까 사실 위에 나왔던 질문을 돌려주자면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더 현실적일 것이다. 네가 군인이고 네 앞에 무장하지 않은 가족이 있다면 그들을 죽일것인가?라는 식으로. 

- 행사를 지켜보면서 들었던 생각을 적어두려 햇는데 대쉬로 이어나가는 글은 생각이 생각을 부르면서 너무 길어지는 경향이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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