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10 17:11

[note]2013_임미리_경기동부연합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고립 서가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라는 기획으로 쓰여진 논문이다. 경기동부연합에 대한 그의 관심과 두개의 광주위에 탄생한 서발턴 그룹으로서의 당권파에 대한 이야기는 그들을 이해하는데, 그리고 불행했던 한국의 어떤 운동의 흐름을 아는데 매우 유용하며 재밌고 서글프기까지 하다. 집단과 기억에 대한 고민은 비안 당권파뿐 아니라 운동하는 주체들이라면 누구나 새길만한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한국에서 짓밟힌 집단의 기억을 토대로 한 운동이라면 그러할 듯 하다. 중간중간 맘에 드는 구절을 발췌했다.



- 이석기 등 경기동부연합의 주요 인물들이 소속되었던 용인성남지역총학생회연합(이하 용성총련)은 군대문화에 버금가는 집단성과 일체감으로 유명했다. 유사한 운동 문화를 가진 대학으로는 서울의 고려대와 광주의 전남대 ․ 조선대를 꼽을 수 있다. 비례대표 사태에서 경기동부연합과 행보를 같이 하면서 범경기동부연합으로 분류된 인물들(광주전남연합과 서울연합 일부)의 출신 대학도 바로 이곳이다. 이들 학교의 공통점은 남다른 투쟁의 기억을 가졌고 그 속에서 특유한 운동 전통과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거꾸로 경기동부연합의 운동 문화를 만들어낸 집단기억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에서는 경기동부연합 세력의 기원이 성남시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광주대단지에 있으며 1980년 5 ․ 18 광주민중항쟁과 1980년대 중후반 주사파의 진출과 함께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집단기억의 형성 차원에서 규명하고자 한다. 집단이 기억을 만들 듯, 기억이 집단을 만든다. 집단은 기억의 공동체를 지향하며 공동의 기억을 통해 일체감을 확인하고 유대를 강화한다.



- 알바슈는 ‘집단기억’은 ‘역사기억’과 구분되며 집단기억은 집단의 삶과 연계된 구체적인 것이고 집단적 정체성과 정통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안병직 2002, 176-180).


- NL은 PD에 비해 집단기억에의 귀속성이 강하다. NL의 반제통일전선은 기존의 가치관과 관행으로서의 사회적 정신 내지 사회의식에 근거해 ‘저항행동의 틀’을 구성하게 하였다.

‘민족’을 통해 과거의 고통과 저항의 집단적 기억을 붙잡아 둠으로써 대중화전략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창언 2011, 8 ․ 46).


- 한편 자주파 내에서도 경기동부연합만이 갖는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이 글에서는 라나지트 구하(Ranajit Guha)가 구체화시킨 ‘서발턴(subaltern, 하위주체)’ 개념을 사용하고자 한다(Guha 1983). 서발턴은 ‘스스로를 말할 수 없는 사람’, 설령 말하더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타자의 시점과 언어에 의해 지워져버리고 마는 존재이다. 그람시의 <옥중수고>에서 비롯된 ‘서발턴’은 한 사회에서 헤게모니 집단을 제외한 나머지 종속집단이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띠는 한편, 마르크스주의에서 혁명의 주체를 논할 때 흔히 배제되었던 부차적인 집단, 즉 이중적으로 소외된 집단들을 포괄한다(강옥초 2002, 139-40).



- 이 연구에서는 비례대표 사태에서 경기동부연합이 보인 모습이 서발턴과 닮아 있으며, 이는 스스로를 차별과 배제의 희생양으로 여기면서 부정을 통해서만 자기를 인식하고, 폭력으로서만 자기를 드러낼 수 있게 된 결과임을 밝혀내고자 한다.



- 1970년대와 1980년대, 서로 다른 두 개의 ‘광주’에서 그 시대 최대규모의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하나는 1971년 8월 10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중부면에 건설된 광주대단지에서 일어난 8 ․ 10 사건이고, 또 하나

는 1980년 5월 전라도 광주(光州)에서 일어난 광주민중항쟁이다. 각기 40여 년과 30여 년이 흐른 두 사건에 대한 기억의 공통점이 장소와 관련되었다는 데 있다면, 차이점은 그 기억의 계승 여부에 있다.


- 1968년부터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기 시작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도시미관을 위해 용산역 인근 등 철도 연변의 판잣집부터 철거하라고 지시했다(손정목 2005). 농촌의 고향에서 서울로 쫓겨온 사람들은 다시 쫓겨나야 했다. 그들이 정착한 곳은 대개는 서울 외곽의 정착촌이었고 그중 가장 열악하고 거대한 정착촌이 바로 광주대단지였다. 그리고, 농촌에서 서울의 판잣집으로, 서울에서 다시 광주대단지로 쫓겨나야 했던 사람의 상당수가 호남 사람이었다. 저임금의 노동집약적 산업화에 의한 농촌에 대한 차별, 영남에 비해 호남에 대한 상대적인 차별, 무허가 판잣집에 거주하는 도시빈민에 대한 사회적 배제의 결과가 한 데로 모여진 것이 바로 광주대단지였다. 그리고 8 ․ 10 사건에 따른 또 한 번의 차별과 배제로 인해 탄생한 세대가 1980년 ‘5월 광주’를 만나면서 생겨난 조직이 성대련이다.


- 대학가에 퍼졌던 광주 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론을 감안하면 이후 성남시의 청년학생운동이 NL 쪽으로 기우는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자주 ․ 민주 ․ 통일 운동을 함께하는 실천가의 삶에 사적 욕망은 허용될 수 없었다. 경기동부연합은 운동 기풍(氣風)이 굉장히 강해 마치 묵가(墨家) 집단과도 같았다(최홍재 인터뷰, 송홍근 2012, 43). PD에 비해 NL

이 집단문화가 강하고 규율도 엄격하지만 경기동부연합은 다른 지역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거의 군대를 방불케 하는 집단성과 일체감은 광주 민중항쟁의 기억으로 단련된 남총련(전남총학생회연합)에 견줄 만했다.

경기동부연합은 개인의 삶을 철저하ㅋ 배제한 공동체적 삶 속에서 자주 ․ 민주 ․ 통일의 꿈과 함께 그들이 공유하는 기억의 내용과 시간을 더욱 강화시켜 나간 것이다.



- 그러나 결과적으로 추모제 등 기억의 의례는 집단의 일체감과 유대를 강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뒤르켐의 말처럼 “한 장소에 모인다는 사실 자체”에서 ‘집합적 열광’이 연출되며, 슬픔 속에서의 소통은 공동체의 사회적 생명력을 높이기 때문이다(김종엽 1998, 297-301). 성남시에서는 1980년 김종태의 분신을 시작으로 모두 17명이 자결하거나 의문사했다.17) 매해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추모제는 경기동부연합의 집단성과 일체감을 더욱 강화시켰을 것이다.


- 18) ‘종북주의’는 2008년 민노당 분당시 평등파가 사용한 용어로 자주파 내부에서는 ‘종북’이 아니라 ‘연북’이라 한다.


1990년 자민통 사건, 1996년 한총련 이적단체화 등으로 위축된 자민통은 스스로를 보전키 위해서라도 교조화 ․ 지하화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당연히 기억의 고착을 초래하였다. 반민주와 반민족이 등치되던 시절, 자민통 운동은 민주화운동 전체를 견인하였다. 그러나 스스로의 손으로 이뤄낸 1987년 6월항쟁의 성과를 축소하고 1990년대 중반의 경제위기를 통해 드러난 북한의 실상을 외면하는 순간 그들은 과거의 기억에 고착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이 고착된 그들에게 남한 정부는 여전히 반민주 ․ 반민족의 원흉이자 미제의 괴뢰였고 북한은 통일조국의 표상이었다.

- 기억의 고착은 달리 말하면 시간의 현재화 현상이다. 경기동부연합은 집단기억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강화했지만 그러한 집단기억에는함정이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어 과거와 현재 사이의 차이점을 인식하지만 기억에는 그러한 기능이 없다. 역사가 없이 반복적이고 무시간적인 기억만이 존재하는 유대 종족에서처럼 기억에서는 과거와 현역사가 없이 반복적이고무시간적인 기억만이 존재하는 유대 종족에서처럼 기억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가 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나 단절은 사라지고 과거가 곧바로 현재화되는 것이다(안병직 2002, 186). 경기동부 연합의 기억의 현재화 현상은 그들의 시원적 기억이라 할 수 있는 광주대 단지 기억의 연장선상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 집단기억은 집단 내 지속성,연속성, 동일성의 의식을 배양하면서 배타성을 강화시킨다. 개인이 가진 기억의 편차조차 평준화시켜 ‘전통’으로 통합시켜 버리기도 한다. 집단 정체성에 의해 구조화되는 기억은 당파적일 수밖에 없다. 집단 정체성의 핵심 메커니즘으로서의 기억은 사회의 권력구조에서 비롯되는 집단의 당파성을 대표한다. 그리하여 기억은 집단의 이익과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안병직 2002, 179). 한때 운동 역량으로 동원되었던 집단기억은 기억의 고착과 함께 집단의 덫으로 그들을 사로잡아 고립시키

고 운동을 퇴행하게 만든 것이다.


- 조직화 ․ 세력화를 위해 집단의 보존과 강화에 골몰한 시간 동안 그들은 외부의 가치와 시선에는 무딜 대로 무디어져 버린 것이다. 훼손된 명예와 매도된 존재에 대한 분노로 ‘분신’26)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할 정도가 되었지만 세련되게 변명하고 항의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에 따르면 서발턴은“스스로를 말할 수 없는 사람”, 설령 말하더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타자의 시점과 언어에 의해 지워져버리고 마는 존재이다. 그들은 어느새 부정을 통해서만 자기를 인식하고, 폭력으로서만 자기를 드러내는 서발턴이 된 것이다.


- 그러나 집단기억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기억의 고착과 집단의 덫이다.


경기동부연합과 세상 사이에 그어진 금에는 공범이 있다. 스스로를 차별과 배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기동부연합의 인식은 다른 가치체계나 ‘종북’의 꼬리표만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꼬리표에 수반되는 억압과

강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억압과 강제의 주체는 바로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은 ‘종북’의 꼬리표가 달린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생사여탈권을 쥔 저승사자와도 같고 그 앞에서는 꼬리표를 뒤로 감춘 채

침묵해야만 한다. 국가보안법에 의해 침묵을 강제당하고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게 되면서 그들의 기억은 서서히 고착되어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임미리 2013, 124). 자기검열을 강제하는 국가보안법 아래에서 치

열한 비판과 사투(思鬪)는 불가능하고 변화 역시 기대할 수 없다. 기억 을 고착시킨 공범은 바로 국가보안법으로 사상의 자유를 금한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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