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7/05 21:26

좋은 학교.

나는 좋은학교를 나왔다. 어느정도로 좋은 학교냐 하면, 수학여행때 탔던 비행기에서 구명조끼를 갖고 내려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전학을 갈 뻔 했다. 내가 나온 학교의 명예는 그토록 고결한 것이어서 나는 그 일이 발각된 후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싸대기를 맞았고, 밤새 무릎을 꿇고 30장의 자술서를 써야 했으며 바로 수업에서 열외가 돼서 급작스럽게 호출된 부모님의 차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다. 공항에 가서 조끼 반납과 사과를 하고 학생회가 항의를 하고 공항측이 직접 교장에게 전화해 선처를 부탁하였고, 징계위원회가 열린 끝에 나의 징벌은 기숙사 영구퇴사로 결론지어졌다. 그 징계가 내려질 때 교장이 나의 엄마를 불러놓고 말해준 선처의 최종 이유는, 성적이 좋아서였다. 영구퇴사 기간동안, 결국 3개월로 축소됐던 기간동안 난 청소시간마다 반성문 세장씩을 다른 내용으로 작성해야 했다. 덕분에 난 청소능력이 감퇴됐고 각종 윤리와 도덕을 그렇듯하게 끌어들여 작문하는 실력이 조금은 늘었다. 청소시간마다 날 전담해서 감독했던 그 도덕선생에게는 유감스럽게도, 나는 조금도 조끼를 가져온 사실을 '진심으로' 반성하지는 않았다. 단지 약간의 후회가 있었을 뿐이었다. 

  커닝을 했다고 추정되는 친구가 있었다. 반복적이라고 다른 아이들이 보다 못해 시험시간에 고발했다. 감독이었던 선생은 일을 덮으려고 했다. 당시 학생부장이었던 선생님은 고발된 친구가 낸 반성문에 부정행위를 인정할 소지가 있어서 반성문을 고치게 했단다. 나는 현장에 없었고 컨닝을 한 친구는 내 절친이었다. 그 친구는 내게 와서 결백하다고 울면서 말했고 난 그를 믿어야 했다. 동시에 그의 부정행위를 목격했다며 여러가지 증거를 대는 다른 친구들도 나는 믿어야 했다. 나는 그의 잘못이 어느정도 인정되고 그가 어느정도 반성하면서 적정한 수준의, 하지만 너무 심하지 않은 수준의 징계정도로 넘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학교측의 입장은 달랐다. 교장은 부정행위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가 내세운 최종 논리는, 심지어 학교법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데려오기까지 하며, 부정행위를 했다고 징계를 줄 수 있는 조항이 없다며 징계할 수 없다고 했다.(물론 내가 조끼를 훔쳤을 때 나를 징계할 수 있는 조항은 없었다. 그때 그가 내세운 조항은 학교명예실추와 특수절도, 살인미수 등 이었다)학생들은 분노했고, 급기야 학부모가 모두 소집되서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들이 모두 모이는 소동이 일었다. 그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교감은 학생들 관리를 어떻게 하냐고 담임 교사들에게 호통을 쳤다. 결국 그 친구의 부정행위는 처벌받지 않았고, 그렇게 친구들에게 의심을 받은채로, 컨닝으로 만들어진 우수한 성적덕에 수시에 합격했다고 추정된 채로, 그는 명문대에 들어갔다. 당시 그 친구의 부정행위를 믿은 친구들은 지금도 거의 왕따 수준으로 그 아이를 대한다.

이처럼 좋은 학교를 만들고 싶었던 교장은 날 또 한번 퇴학시키고자 했다. 비록 학교 규정에 없었지만, 내가 방에서 밤새 했던 게임을 적발하고, 퇴학시키려 했다. 카드놀이를 했다고 징계를 받을 위기에 처한 나는 교장실로 찾아가 직접 따졌다. 좋은 학교의 교장인 그는 교장실로 직접 찾아온 학생을 보고 분노하며 나에게 노름을 한 학생이라고 했다. (그가 교장에 부임하며 당시 막 대통령이 된 노무현을 언급하며 참여학교로 만들겠다고 햇던 연설이 기억난다)나는 내가 했던 게임을 설명하며 노름이 아니라 했지만, 그는 돈도 안걸었는데 어떻게 밤을 새냐며 날카로운 추리를 선보였다.(노름이 아니었다면 사실, 퇴학시킬 조항이 없었다) 자퇴하라는 압박을 받았지만 나는 자의가 아닌 퇴학을 하고 싶지 않았고 적당한 체벌로 우리의 처벌은 넘어갔다. 물론 나로인해 새로운 규정이 생겼다. 카드 소지자 퇴사. 

학교 이름이 바뀐다고 동문들이 들고 일어섰다. 내게도 3년이란 시간을 친구들과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보냈던 곳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누군가를 좋아해보고, 미래를 꿈꾸기도 하며, 사회의 쓴맛을 좋은 교장으로부터 미리 맛보고 숱한 땀과 눈물을 흘렸다. 그 추억은, 적어도 내게는,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혹은 내 경험속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학교이름이 좌우하진 않는다.(물론 그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젠 대부분 과거에서만 존재하지만 말이다) 학교 이름을 소중히 여기는 동문들의 반발은 아마도 우리 학교가 좋은 학교였기 때문일 것 같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단지 이름에 담긴 소중한 추억때문이라고 할지라도 그토록 적극적으로 학교측에 교명 변경을 반대할 수 있는 힘은 그들이 좋은 학교를 나온 훌륭한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좋은 학교를 나오는 후배들이 자신들과 같은 학교이름으로 같은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좋은 학교의 명찰은,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의 훌륭한 교장은, 나의 싸대기를 때린 도덕 선생은, 그리고 교명변경에 반대하는 동문들은, 학교의 명예를 위해 노력하며, 학교의 이름을 지키려 애쓴다. 우리는 그래서 누군가 '좋은 학교'의 명예에 어긋난다고 하는 행동을 할 때 전체의 이름으로, 집단의 명예를 위해 한사람을 조진다. 거침없이 배제한다. 그건 마치 좋은 가문의 영광을 위해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위를 한 자식을 호적에서 파는 행위와 비슷하다. 나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좋은 학교가 조금도 자랑스럽지 않고, 조용히 출신학교 이름을 말하지 않으려 한다. 학교의 이름으로 내가 평가되는 것이 싫기에. 명문이라는 이름이 어떤식으로 만들어지고 어떤 식으로 사회의 억압을 만들어내며 어떻게 위계를 유지하는지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기에 말이다. 틈만 나면 나이, 출신지역, 출신 학교를 묻는 한국사회에서 이건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은일이다. 또 문득문득 출신학교를 말하는게 내게 어떤 이점을 가져다 주기에 권위를 가져다 주거나 무시받지 않게 해주기에 말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학벌이라는 구조로 형성된 위계에서 그 혜택을 누리며 그 구조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지않은 욕구가 더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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