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13 01:03

한미 비정상회담에 관하여 정치사회 등에 대한 잡상들

 한미 정상회담이 열렸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정상회담에 대한 기사를 거의 들은 적이 없다. 내가 최근에 들은 소식이라곤 성추행 관련 소식과, GM의 통상임금에 대한 얘기이다. 미국의 정상이라면 오바마인데, 그리고 그는 꽤 유명한 사람인데 그에 대해 내가 들었던 가장 굵직한 소식은 박근혜와의 악수사진의 합성에 대한 것이었다. 양 국가의 중차대한 일을 결정짓는게 정상회담일텐데 정상에 대한 얘기가 없는 회담은 비정상회담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비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최근의 들은 소식 두 개는 요약하자면 국가의 한계지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이 중 부차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성추행 건은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용의자는 국경을 넘어 도망쳤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의 품위와 성추행 피해자의 인권이 충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내분이 일어난 청와대는 진실을 밝힐 것을 다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과를 제일 많이 받은 이가 박근혜와 국민들임을 볼 때 아직까지 피해자의 인권보다는 국가, 혹은 태통령의 품위가 우세한 듯 하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좀 더 중요한 문제는 GM에 대한 것이다. GM회장은 국가라기보다는 자본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한국에서의 외국인투자 철수라는 협박으로 노동자들의 임금 하락을 요구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는 한국의 기업들도 환영할만한 소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기에 공감했고 보수 언론은 이에 화답했다. 물론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는 사법권에 대한 월권, 노동자들의 임금 감소 등의 이유로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여기서 나는 이 반발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있지만 편하게 동참할 수만은 없고 여기서 내 고민은 시작된다. 

 GM과 한국정부의 갑을관계는 세계화시대를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다. 자본이라는 갑에 대해서 비단 한국뿐 아니라 미국이라는 국가도 을이 돼 있다. 최근 수십년간의 미국경제의 쇠퇴는 미국 제조업의 이탈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강력한 미국의 노조의 역할로 미국제조업의 가격경쟁력은 떨어졌고 이 자본들은 자유롭게 중국으로, 일본으로 그리고 한국으로 몰려왔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역설적으로 미국의 노동자들의 고임금의 기여가 어느정도 있기도 하다는 것이 역사의 불편한 조각인것이다. 물론 미국이라는 국가는 달러 발권력과 강력한 군사력으로 그 위기를 '창조'적으로 지탱하고 있지만 오늘날 이 체제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이주노동자의 여러 고달픔을 통해서 엿볼 수 있듯이 노동자의 이동에는 숱한 어려움이 따르는데 비해 자본은 자유롭게 이동한다. 한국 제조업의 경쟁상대는 미국이나 일본이 아니라 인도나 중국을 비롯한 거대한 저임금 국가들일것이다. 이미 우리 시대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됐던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그리고 희망버스는 저임금을 찾아 한진이라는 자본이 한국을 버리고 필리핀으로 간 것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 이 외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들은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들에 공장을 세우고 서서히 한국에서의 제조업 의존성을 줄이려 할 것이다. 우리가 삼성의 여러가지 부정행위에 목소리를 높이고, 그 결과로 한국이 '기업하기 어려운'국가가 된다면 아마 삼성도 멀지 않은 시기에 기업하기 더 쉬운 국가, 더 기업 프렌들리한 나라로 이동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지난 가을에 방문했던 인도의 포스코 반대 프로젝트가 떠올랐다.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내가 포스코 프로젝트를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았던 것은 인도의 현실이었다. GM이 한국정부에 대한 갑이라면 포스코는 인도정부에 대한 갑이었다. 한국정부가 외국인 투자의 철수를 우려하는 것 처럼 인도정부도 그러했다. 특히나 2014년에 있을 총선과 이를 통해 구성된 정부가 포스코에 취할 태도에 숱한 외국인 자본들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이는 2012년에 있던 한국대선에서 보수적인 박근혜 후보가 내세운 구호였던 경제민주화에 대한 외국자본들의 우려와 비슷한 종류의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보듯이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는 GM으로 대표되는 자본에 의해 좌절될 위기이다. 물론 이 위기는 '창조경제'가 실현된다면 극복될지도 모르지만 창조경제는 박근혜의 수첩만큼이나 미궁속에 빠져 있고, 윤창중이라는 수첩의 결실처럼 길이 잘못든것 같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노동자들의 임금 저하에 반대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를 하기 전에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것이 분명 자본의 이탈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자본의 이탈, 그러니까 국익의 손상을 감수하면서도 우리의 임금을 주장할 준비가 돼 있는가 묻고, 그에 대해 고민과 대안을 의논하면서 우리는 임금 상승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노동자들의 임금과 국익을 동시에 주장하는 한 자기모순에 빠지거나 국제적 갑의 위치를 더욱 굳건히 유지함으로서 다른 나라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게 될수밖에 없다. 이 모순이나 비윤리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국가가 아닌 자본으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 '정상회담'이라는 국가구도는 이러한 구도를 감추는 일종의 착시이다.

 한국과 미국, 한국과 중국의 정상회담은 퍼포먼스이거나 점점 그 중요도가 낮아질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미 자본은 국가의 갑이 됐다. 우리가 윤창중의 성추행에 국민으로서 부끄러워하기보다는 GM이라는 갑의 요구에 글로벌 을로서 고민해야 할 이유이다.  


덧글

  • 들깨 2013/05/17 23:28 # 답글

    대통령 방미 전에 아파치 헬기와 패트리엇미사일 도입을 발표하고 국방부와 마이크로소프트사 간의 저작권 분쟁도 우리 양보로 마무리된 것도 숨겨진 정상회담의 비용이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87774.html

    방미 성과는 누가 가렸는가? / 김종대(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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