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5/10 19:29

[note]2005_윤수종_소수자_운동의_특성과_사회운동의_방향 note

 소수자들이 운동에 나서기 위해서는 바로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자기 인식이 먼저 있어야 한다. 물론 소수자들은 복수적 정체성의 측면보다는 자신의 소수자적 정체성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부분 정체성으로 자신의 전체 정체성을 규정하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소수자들의 집단 정체성을 확보하기는 쉬우나 고립되거나 단절될 수 있고 새로운 수평적 연계나 연대를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부분적 정체성을 긍정하고 그것을 전체 정체성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나의 소수자 운동 안에서도 또 다른 소수자가 등장하여 독자적인 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 운동을 총괄하여 정리하려는 것 자체가 다수자적 발상이라고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소수자들은 사회에서 당연시하거나 표준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정체성을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체 정체성을 둘러싼 갈등에 빠지기 쉽다. 예를 들어 어엿한 아버지이고 훌륭한 교사이며 효자인 한 남성이 동성애자라고 밝혀질 때, 그는 동성애자라는 부분적 정체성으로 자신의 전체 정체성을 규정당한다. 이주노동자의 경우도 여러 가지 부분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주노동자라는 정체성이 다른 정체성 부분들을 배제한 채 전일적으로 규정해 버리는 데서 오는 정체성 갈등은 엄청나다. 죄수 또한 마찬가지다.

소수자들이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정체성을 긍정하는 혹은 넘어서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는 그러한 정체성을 스스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과 자신의 인성 전체의 관계를 확인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소수자들은 복수적 정체성의 측면보다는 자신의 소수자적 정체성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부분 정체성으로 자신의 전체 정체성을 규정하려고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소수자들의 집단 정체성을 확보하기는 쉬우나 고립되거나 단절될 수 있고 새로운 수평적 연계나 연대를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부분적 정체성을 긍정하고 그것을 전체 정체성과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소수자 운동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조직화 양상을 볼 때, 운동의 초기에는 소수자들을 보호 · 구호한다는 차원에서 시작한 단체와 집합체들이 많았지만 현재는 점차 소수자 당사자들이 밑에서부터 구성해 나가는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그리고 법률적으로 합법화되지는 않을지라도 일단 제도 개선 운동은 소수자들의 상황과 차별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올림으로써 다수자적 시선을 교정해 나가는 성과를 올리기도 한다. 

각 소수자 운동은 그 각각이 처한 상황이 상당히 다르다. 소수자 각자가 소수자라는 입장에서는 공통적이지만 전혀 다른 생활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성매매여성의 생활세계, 죄수와 성적 소수자의 생활세계는 상당히 다르다.

소수자들이 측정 불가능한 특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바로 다양한 욕망형태를 실험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욕망을 ‘넘치는 흐름’이라고 규정한다면, 소수자들의 불법성이야말로 바로 욕망의 흐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물론 소수자들의 행동(활동)이 사회적으로는 대체로 비도덕적인 것, 일탈, 추한 것으로 규정되지만 말이다. 원래 욕망은 그렇게 드러나면서 점차 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닌가?

정말 자신들의 실험 형식들을 하나의 선택지로서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선택지가 아니라 전혀 다른 준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예를 들어 레즈비언 커플이 보여주는 사랑 관계는 사회의 지위 기준을 횡단하는 측면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경제적 관계나 다른 사회적 관계의 개입 여지가 가장 적은 순수한 사랑형태를 제시한다. 이러한 형태는 엥겔스적 의미의 사랑에 훨씬
더 가깝지 않을까? 

자신의 준거를 제시하여 그것을 선택할 사람에게는 색다른 준거의 존재를 알리는 것, 이것은 자신의 준거를 강요하는 다수자적 실천과는 전혀 다른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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