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23 19:22

심세광이라는 사람.

푸코가 고대 그리스-로마의 예를 드는 것은 현행의 주체 형식을 상대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과 같은 주체의 모습, 지금과 같은 삶의 방식이 일종의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하는 숙명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뒤흔들기 위해 자신 특유의 고고학·계보학을 동원한 것이죠. 더 간단히 말하면 지금과는 다르게 존재했던 ‘역사적’ 주체의 모습을 예로 보여줌으로써,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또 다른 주체 형식이 분명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푸코 자신의 스캔들과도 같은 삶 자체가 그런 노력의 일환이지 않았을까요? 이 역시 새로운 주체가 되려면 동성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부단히 자기 자신의 삶의 형태를 실험하고 모색하고 변경해가는 과정을 중단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굳이 그리스인-되기, 동성애자-되기를 할 필요도 없고, 그게 유일한 방법도 아니라는 거죠. 제가 예전에 번역한 <주체의 해석학>에서도 그렇고, 곧 번역해 출간될 <자기의 통치와 타인의 통치>에서도 그렇고, 푸코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작품’이란 게 무엇입니까? 유일무이하고 독특한 것(la singulière)입니다. 미리 정해진 정답 같은 것 없다는 겁니다.

[출처] 심세광 선생님의 미셸 푸코 공개 강연(후기)|작성자 난장출판

가령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후반부에서 푸코가 분석하는 신자유주의적 주체, 즉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예로 들어보죠. 제가 옮긴이 후기에도 썼듯이, 푸코에게 호모 에코노미쿠스란 ‘예속화’된 주체입니다. 푸코가 주장하는 건 이런 예속화와 반대되는 ‘주체화’입니다. 예속화는 규율이나 시장 원리 같은 통치 원리에 순종하는 자기통제의 주체가 되는 것이죠. 이와 달리 주체화는 그런 통치 원리에 의거하지 않는 자기에 의한 자기의 구축을 행하는 주채입니다. 주체의 구축(즉, 예속화)이 권력의 호명에 응해 권력을 자신 안에 내면화하는 예속화의 실천에 불과한 것이라면, 자기에 의한 자기의 구축(즉, 주체화)은 권력의 명령을 거부하고 자기를 다른 방식으로 재창조하려는 저항적 자기변형의 실천입니다. 푸코는 오늘날의 당면과제가 우리들이 누구인가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현재 존재방식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출처] 심세광 선생님의 미셸 푸코 공개 강연(후기)|작성자 난장출판

http://blog.naver.com/virilio73/80170173336


이건 통째로 숙지할 만한 가치가 있다. 심세광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좀 더 찾아봐야겠다. 이게 강연에서 나온거라면 순발력이 무지 좋고 탄탄한 사람인 듯. 물론 편집자의 손을 거친거라서 원래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덧글

  • 수수 2013/02/24 00:41 # 삭제 답글

    우리들의 현재 존재방식을 거부하는 것이라는 말인 참 좋네. 참 어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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