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20 21:23

성해방과 가족해체-갠지스 강변의 성기 노출 사두를 보고 여행 중 단상

여자가 벗는게 성해방이면 자식이 가출하는게 가족해방인가.

 

한 때 남녀가 모두 벗는게 제일 이상적일거라 생각했다. 옷이라든가 장식이라든가 억압돼있는 성을 해방시키는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친한 여성들에게도 여성도 벗어야 한다거나 여성도 성적 욕구에 충실해져야 한다고 강변했었다. 지금도 성해방이랄까, 어쨌든 성을 기반으로 한 어떤 불평등과 억압이 없는게 이상적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여성에게 과거와 같은식으로 어떤 자유를 요구하지 않는다. 현재의 맥락에서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느꼈기 때문이다.

 

강가, 그러니까 갠지스 강변에 홀딱 벗은 힌두교 사제들이 꽤 몰려와 있다. 12년마다 한번씩 있는 힌두교 최대 축제인 쿰브멜라가 가까운 도시인 알라하바드에서 열리고 있고 엄청난 숫자의 사두들이 알라하바드에 몰려있다. 쿰브멜라가 끝물에 접어들었고 쉬바신의 축제라든가 홀리라든가 힌두교의 큰 축제들이 연달아 열리면서 쉬바신의 성지이자 인도 최고의 성지인 바라나시로 사두들이 몰려 온다. 날씨도 따뜻해졌겠다 가트에선 자신의 성기까지 활짝 드러낸 사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는지는 그들 자신만이 알겠지만 겉으로는 당당해 보인다.

 


바라나시의 강가(갠지스강)변에 요새 흔히 볼 수 있는 나가 사두. 이들은 나체로 가트에서 명상을 하거나 만트라를 외거나 짜이를 마시며 소일한다. 얘기를 좀 나누다가 사진을 찍어도 부끄러워하거나 말리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나체로 수행하는 여성 사두를 본적은 없다. 2013-2-20


하지만 힌두교의 일부 사제들이 자유롭게 벗는다고 해서 성적으로 자유로운지는 별개의 문제다. 힌두교는 성적인 장면들을 노골적으로 묘사한 카마 수트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대개 그런 조각들은 남성 중심적인 시각으로 묘사돼 있다. 힌두교에서 벗을 자유가 있다면 그것은 남성들에게일 것이다. 힌두교의 여성들은(비단 힌두교만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여러 가지 색색의 천들로 자신들의 몸을 감싸야 한다. 갓 결혼한 여성들은 얼굴도 가리고 외간 남자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카마수트라를 보면서 과거의 힌두교는 달랐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아무리 관찰해도 조각상속의 여성들에게 벗을 자유가 있어보이진 않는다. 남성들에게 벗길 자유가 있어 보일 뿐.

 

성해방이라는 이상은 여전히 성적으로 많은 것들이 억압돼있는 상황에서 유효하며 강력한 이상이다. 하지만 현실속에 촘촘히 내장돼있는 성별간의, 젠더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살피지 않으면 때론 그 구호는 폭력이 된다. 인도에선 남성들이 길거리 어디서나 훌렁 남대문을 내리고 소변을 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여성이 그랬다간 단번에 주목을 받을 것이다. 남성이 훌렁 벗고 거리를 활보해도 종교라는 이름으로 용인되곤 하지만 성적으로 매력적인(물론 여성 중에서도 몸의 생물학적 완성도라 여겨지는 기준에 따라 권력이 다를 것이다. 매력적이지 않은 여성이 노출하고 다니면 남성들은, 혹은 여성들까지 욕과 비난 조롱을 퍼붓기 십상이다.)여성이 훌렁 벗고 다니면 사태는 반대일 것이다. 길거리의 남성중 반수정도는 그 여성을 어떻게 한번 해볼까 욕심을 품을 테고 나머지 반수정도는 남성들이 그 여성을 쳐다보고 성욕을 품고, 또 심지어 성추행하고 강간한다 해도 그것은 벗고 다닌 여성의 책임일거라 생각할 것이다. (반대로 훌렁 벗고 다니는 젊은 사두에게 어떤 여성이 겁탈 혹은 성관계를 제안만 하더라도 그건 남성이 벗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이 문란하고 타락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여성에게 있어 노출은 그래서 정치적으로, 물리적으로, 사회적, 도덕적으로 위험하다. 이런 구도를 생각지 않고 여성에게 자유로운 노출을 종용하고 여성에게 성욕을 드러낼 것을 요구하는 나꼼수적인 목소리는 폭력에 가깝다. 때론 이런 목소리들은 성해방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성해방을 빙자해 남성들의 환타지에 여성들을 복무시키려는 목적인 것 같다.(물론 나꼼수 제작진의 의도는 그런 것들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꼼수 비키니 사건은 그런 목소리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보여주는 예이다)


길에서 남성들이 소변을 보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지만 여성들은 거의 볼 수 없다. 하지만 길에다 배변하는데 한국보다 관용적인 인도에서는 이런 장면을 가끔가다 볼 수는 있다. 남성들처럼 노골적이지 않고 소위 '아줌마'에 한해서 볼 수 있다. 젊은 여성이 노출하는 모습은 나는 본적은 없다. 엘로라 사원군에서.  2013-2-8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유는 억압돼 있는 사람에게 종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억압되지 않도록 자유를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가해자-피해자의 이분법에 의한 비약이라 완벽하지는 않을 테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신나게 때리고 있는데 거기 가서 맞고 있는 사람에게 어서 일어나 너도 때릴 수 있어라고 응원하고 있는 것고 비슷할테다. 여성이든 청소년이든 루저인 남성이든 어떤 위협 없이 자신의 몸을 노출하고 성욕을 드러내고 성을 향유할 수 있도록 권력의 배치를 바꿔나가야 한다. 나아가 성이란게 엄청나게 중요한게 아니도록 돼야 한다. 마치 성이 굉장히 특별한 것이어서 성을 소중히 여기거나 성이 모든 사회 해방의 열쇠인 것처럼 말하는 것도 결국은 성해방의 이상에서 멀어지는 것일게다. 결국 우리는 성을 해방 시키는 게 아니라 성을 놓아주어야 한다. 여기서 성을 놓아주는 건 결국 성과 관련된 많은 기제들, 그러니까 생산, 가족, 외모, 유전등을 해체하는 것일게다.

 

해체는 매우 필요하지만 위험한 작업이다. 근본주의적인 정신에 입각해서 급진적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는 행위는 매력적이지만 치명적이다. 가족이나 성 등은 우리에게 너무나 깊숙하게 사회화돼있고 이성이든 감정 차원에서 깊숙이 의존해있기 때문에 당장 모든 것을 부숴버리는 것은 우리의 삶을 위협하게 마련이다. 해체는 여러 가지 관계를 고려해서, 권력이든 감정이든 시간 등을 충분하게 고려해서 사회적으로 함께 해나가야 하는 작업이다. 가족을 해체한답시고 당장에 자식을 갖다 내버리고 부모가 이혼해버리는건 해방이라기보다는 폭력일 것이다.(물론 이혼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권력관계에서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우위에 있다. 자식이 많은 것을 부모에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혹은 의존하도록 사회구조가 짜여있는 상황에서 부모 일방적으로 관계를 해체하는 것은 잔인한 폭력이다.

 

관계의 해체, 혹은 변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실로 엄청난 고민과, 끈질긴 노력과, 진솔하고도 적극적인 대화와, 연관된 많은 권력관계들에 대한 섬세하고도 예민한 고려와, 권력관계를 고려한 많은 연대로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시간과 감정이 소모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일상과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곳에서도 일어난다. 아니 그런 기본적인 곳의 관계의 변화가 더 핵심적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만큼 어렵다. 도처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해체, 변화를 나는 혁명이라고 부른다. 만약 앞에서 언급한 노력들이 수반되지 않는 혁명이란 히틀러가 했던 어떤 혁명이나, 스탈린과 마오쩌둥, 폴포트가 한 어떤 혁명들처럼 폭력적인 혁명이 될 것이다.

 


함피의 가장 큰 사원인 비루빡샤 사원에 있는 조각들 중 하나. 카주라호를 비롯해 많은 사원들을 보며 성적인 묘사가 조각돼있는 것을 많이 봤지만 여성이 저런식으로 노출된 조각을 본적은 없다. 어떤 맥락일지 궁금하다. 이 조각에서는 여성이 상당히 당당하게 자신의 성기를 노출하고 있다. 이 외 대부분의 조각들은 남성이 훨씬 우월하게 그려지고 있는것으로 봤다. 2013-2-15

가족 얘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덧붙여야겠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가족관계에서 어느 모로 보더라도 자식이 약자이다.(물론 자식은 부모맘대로 안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힘을 권력이라고 일컫는데 이를 적용하면 부모과 권력자가 아니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아무리 탄압해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 사상범과 국가의 관계에서도 국가는 권력자가 아니게 된다. 권력은 비단 관계맺고 있는 양자의 의도를 관철시키는 힘이 아니라 속해있는 사회와 맥락의 넓은 권력의 장속에서 비교돼야 한다) 어떤 진보적인 사람들은 여성에겐 성적으로 자유로워지라고 강변하지만 왜 자식들에게는 그러하지 않을까.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것은 비판받아야 하고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것은 지원받아야 할 일이다.(지지라는 단어를 일부러 쓰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왜 부모는 너에게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겠어혹은 호적에서 파내겠어라는 말을 쉽게 하는 반면에 부모를 떠난 자식들은 후레자식 취급을 받는가. 이혼한 부부도 여성에게 위자료를 주는 시국에 말이다. 가출하는 자식들, 호적에서 파내진 자식들, 부모가 경제적 지원을 끊은 자식들에게 위자료를 지원하는 제도가 절실하다. 또한 슬럿워크라는게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후레자식 워크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가출 청소년들이 궁핍한 생활을 하는건 부모가 자식을(위해) 맘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이지 결코 청소년들이 부모 말을 안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여성들이 남성을 평가할 때 갖고 있는 중요한 기준으로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신체적인 특징상 중요하게 거론되는 건 키나 얼굴, 성기정도가 될 것이다. 셋다 노력으로는 어쩔 수 없고 타고난것과 관리가 중요할텐데 키나 얼굴은 여성들이 드러내놓고 선호도를 밝힐 수 있는 반면 성기에 대해서는 쉽게 얘기하기가 어렵다. 키큰 사람이 좋다고 대놓고 밝혔다가 뭇 남성들의 단죄를 받은 일도 있는 판에 성기에 대한 선호도를 노골적으로 밝혔다가는 어떻게 될지 뻔하다. 물론 맥심이라든가 하는 특정 장에서는 선호도를 노골적으로 밝히는 여성들이 있고 남자들이 열광하는 편이다. 물론 남성들은 여성들의 외모를 밝히든, 가슴크기를 밝히든, 낮에는 조숙하지만 밤에는 화끈한 여자를 원하든 자신의 취향을 밝히는게 위험한 일은 아닐 것이다.) 


덧글

  • Sita 2013/02/20 21:42 # 답글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많은 부분에서 동감하고 갑니다. 하하 근데 저 카주라호 사진은 맘에 드네요 ^^저는 카주라호에서 저렇게 세세하게 못봤는데 그때도 새삼 인도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했었지요. /ㅁ/
  • 들깨 2013/02/23 00:53 #

    감사합니다. 급하게 쓴 글이라 부족한 부분이 있을텐데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사진은 카주라호가 아닌 함피의 사원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제가 글씨체를 캡션이랑 본문이랑 다르게 하지 않아서 헷갈리게 해놨네요. 죄송합니다.
  • 2013/02/21 10:3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수수 2013/02/24 01:07 # 삭제 답글

    후레자식 워크 좋은 생각이네. 대학입시거부 할로윈 행진 처럼 진행하면 되겠다.

    그나저나 '가출 청소년이 궁핍한 생활을 하는 건 ~ ' 이 문장이 그 자리에 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다ㅋ

    부모의 인식, 가족제도에 익숙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면, 먼저 경제적으로 청소년이 자립할 수 있게 되어 쉽게 가출할 수라도 있는 사회가 되면 좋을텐데. 우선 청소년이 노동할 수 없는 현실이 개선되어야 할 거고, 청소년 주체가 경제적 행위를 할 수 있게 바뀌어야 할 텐데. 그 지점에서 과거(현재도 많은 나라에서 진행중인) 아동노동금지,반대 운동은 전망을 잘못 설정한 게 아닌가는 생각이 들어. 마치 인도 뭄바이에서 만난 (여아)낙태반대운동처럼.
  • 행인 2015/11/16 17:44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고가요 감사합니다 조별발표하는데 좋은 참고문이 될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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