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9 18:41

인도와 네팔을 배낭여행하는 진보주의자를 위한 여행 안내서 배낭여행자를 위한 여행안내서

인도와 네팔을 배낭여행하는 진보주의자를 위한 여행 안내서

 

여행지에서 우리는 가이드북을 편다. 가장 큰 신전과 아름다운 왕궁이 있는 곳으로 간다. , 인도의 종교란 얼마나 신성한가. 거대한 사원은 경이롭다. 황제의 예술적 안목은 얼마나 높은가. 물건을 사거나 교통수단을 탈 때 우리는 바가지를 쓰지 않기 위해 흥정을 하며 값을 깎는다. 한 푼이라도 더 싼 가격으로 흥정해야 우리는 안심하고 뿌듯해 한다. 그리고는 가장 유명하다는 식당이나 까페에 가서 메뉴판에 적힌 가격을 보고는 한국에서는 이걸 살려면 훨씬 비싸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높은 가격을 지불한다.

 

바꿔 생각해보자. 한국에 온 외국인이 한국에서 제일 크다는 순복음교회에 가서 감탄한다. 한국인들의 기독교적 신앙이란. 잘 단장된 청계천에, 사대강변에 가서 한국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나라라며 감탄한다. 광화문광장에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이나 이승만 동상을 보면서 한국인들의 애국심에 대해서 또 감탄한다. 맛있다는 집을 찾아 재벌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비싼 식사를 시키지만 명동에서 쇼핑을 할 땐 최저시급을 받는 알바들이 파는 악세사리들을 산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주의자라고 한다면 이 외국인들에게 무언가 다른 것들이 있다고 얘기하고 싶지 않은가. 순복음교회가 가진 어떤 문제에 대해서. 청계천, 사대강, 광화문광장, 이승만을 둘러싼 어떤 역사정치적 갈등에 대해서. 그리고 재벌의 독식 문제와 노동자들의 임금문제에 대해서.

 

여행은 모순적인 공간이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낯선 여행지에선 한푼이라도 더 깎을려고 애쓴다. 경찰력이 강화되는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권력에 대해서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도 여행지에서 경찰을 마주하면 안도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한국에선 우파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국가 정통성이나 배타적인 민족주의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다가도 외국에 가면 무언가 전통적인 것, 순수한 것, 역사적이고 거대한 스케일이 있는 행사들을 찾게 된다. 그리고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특별한 체험으로 간직한다. 내 몸 하나도 간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힘들고 두려울 땐 쉽게 돈으로 자신의 안정과 편리를 산다. 물가차이가 심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우리는 쉽게 사치적인 소비에 젖어들게 마련이다.

 

여행은 일시적인 삶이고 우리가 꿈꾸던 무엇이기에 현실에서 눌러둔 욕구들을 발산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아니, 현실에서 참아왔던 욕심들을 마음대로 발산하는게 오히려 여행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무언가 대단한 것을 봐야 하고 특별한 것을 해야 한다. 혹은 일상에서 벗어나서 마음의 평화를 누려야 한다. 여러 가지 스트레스들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느껴야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추구하는 정치적 올바름은 그래서 여행에서는 잠시 잊어둔다. 내 생활을 구성하는 것들이 옳은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이 대안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긴장은 거추장스럽다.

 

여행이 가지는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말도 안통하고 풍토가 다른 환경에서 내게 접해오는 것이 낯설다. 관광지에 대한 정보는 가이드북에 있지만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몸에 익힌 자질구레한 것들은 알 수 없다. 정보는 부족하고 시간은 없다. 체력은 딸리고 위험은 산재해 있다. 안 그래도 이런 불편들, 두려움들로 긴장의 연속인 여행에서 혹여라도 아프거나 바가지를 한번 쓰기라도 하면 게임 끝이다. 여행은 전쟁이며 나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안전하게 살아서 스윗홈에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유행하는 어떤 개그 프로그램에서 모든 일에 띵킹하고 생각하려는 대학원생을 조롱하는 개그 코드를 쓰는 것을 봤다. 물론 실제 삶에 결부되지 못하고 현실과 유리되는 이상 속에서 살아가는 고학력자들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를 보고 웃음을 터트리는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분명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조롱이 분명 담겨 있다. 인문학의 붐이 일면서 교양으로서 인문학을 소비하는 풍조는 일고 있지만 나아가 사회적인 여러 갈등들과 자신의 삶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성찰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있는 사람들은 있는 사람들대로 소비하고 쾌락을 누리는데 급급하고 없는 사람들은 또 당면과제인 생존에 매달리면서 환타지를 좇는다. 소비하거나 살아남는 데 급급한 삶, 사치와 생존의 경쟁에 몰입하는 삶, 바로 우리가 비판하던 신자유주의적인 사회의 풍경 아닐까.

 

좋은 삶에 대한 의문이 없는 사회, 그저 살아가기에 급급한 사회가 신자유주의적 사회라면 어떤 여행인가에 대한 의문이 없는 여행은 어떤 것일까. 어떤 이들은 한국에서는 비싼 것들을 여행지에서 싸게 누리는데 급급하다. 한국에서는 할 수 없는 특별한 것들을 자극적으로 누리느라 바쁘다. 또 아프지 않고 살아서 귀국할 수 있는 게 지상 과제인 사람도 있다. 소비하거나 살아남는데 급급한 여행, 좋은 여행에 대한 질문이 없는 여행, 여행 그 자체로 목적인 여행은 전쟁 같은 우리네 일상과 얼마나 다를까.

 

어떤 것이 옳다고 난 말하지 못한다. 분명한 것은 찾기 어렵고 사회는 복잡하다. 진리가 실종된 포스트모던 시대에 우리는 무언가를 잘못됐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 없이 사회의 문제들을 마주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나을지, 어떻게 하면 더 따뜻할지 고민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공부하고 모이며 정치나 운동에 관심을 가지며 참여한다. 그런 이들을 나는 진보주의자라고 부르겠다. 보수에 대항하는 어떤 진영으로서의 진보가 아닌 무언가 반성하고 고민하며 노력하는 사람들 말이다. ‘진보주의자가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그들의 여행도 조금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여행이 가지는 여러 가지 한계들이 있다. 어설픈 여행객을 노리는 바가지와 사기의 위험은 항상 주변을 배회한다. 병이든 강도든 사고든 신체적 위험도 실재한다. 여성의 경우엔 더 심하다. 진한 커피, 뜨거운 샤워, 빠른 인터넷 등 우리에게 어쩔 수 없이 익숙해진 것들이 없는 순간 순간은 괴롭기 마련이다. 여행이 가지는 휴식이나 일탈적인 측면도 분명 있어야 한다. 여행은 언제나 우리의 고된 일상을 위로하는 역할을 해왔다. 재충전도 필요하다. 사회와 사회가 만나는 것이 여행인 만큼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접하고 눈에 담는 것도 중요하다.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는 것도 삶이 지치고 힘들 때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제약과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나서 보다 나은 여행에 대한 고민은 출발해야 할 것이다.

 

천편일률적인 여행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도 찾아보면 꽤 많을 것이다. 여행에서 소비하고 관광지 일색의 여행을 하면서 불편한 사람도 꽤 있을 것 같다. 패키지 여행에 대한 문제의식은 더 커서 홀로, 혹은 둘이 자유롭게 여행하는 사람의 숫자는 이미 상당하다. 이미 여행자의 제국주의적인 위치와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시각을 비판하는 책도 꽤 나와있다. 계속해서 그런 책들이 나온다는 것은 그런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이리라. 그리고 이미 여러 가지 문제의식과 마주하며 나름대로의 여행을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지에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여행준비를 해야 좀 더 다른 여행이 가능한지에 대한 정보를 알기는 쉽지 않다. 나아가 어떤 여행이어야 하는지, 어떤 방식이 좀 더 나은 여행일지에 대한 논의나 공유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조금 더 얘기하고 조금 더 나누고 조금 더 고민하면 우리의 여행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우리가 우리의 여행 방식을 고민해봐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회와 일상에 대해서 고민하는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행은 어디까지나 삶의 연장이다. 사회와 사회가 이어지는 현실이다. 여행자는 여행이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이다. 여행은 단지 자랑거리나 환타지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 개입하는 것이다.

 

나 또한 여행의 경험이 많지 않고 여행이라는 경험의 특성상 여행지의 깊은 구석구석을 알기는 어렵다. 어떤 여행이 좋은 여행인지에 대한 답을 주기는커녕 문제를 심화시키는 것을 제안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내가 가진 문제의식을 끊임없이 불편함으로 가지면서 이 곳 저 곳을 다녔다. 대부분의 시간은 내 비판의 지점이 내게로 돌아오게 마련이지만 문득문득 , 이런 방식이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 경험을 공유하고 좀 다른 방식의 여행들을 제안해보고 싶다. 내 방식이 옳다고 강변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런 제안들이 논의되고 여행에 대한 고민이 늘어날 때 나는 좀 더 나은 여행이 가능해진다고 생각한다. 내가 쓰려는 글은 여행지의 숙소나 교통, 맛집에 대한 정보나 화려한 사진들, 심금을 울리는 감상문이 아니다. 뭘 봐야 제대로 보는 거고 뭘 해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건지 추천하는 글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여행의 방법론에 대한 하나의 제안이 될 것이다.

 

지금 상태에서 쓰고 싶은 주제들은 이렇다. 여행에서의 소비. 바가지와 흥정. 여행의 준비. 여행지에서의 언어. 역사 유적을 관람하는 태도. 여행지의 사회운동에 관심갖기, 여행지의 인권, 여행지의 선정. 여행자들과의 대화. 여행에서의 음식. 축제나 행사를 관람하는 태도. 여행지의 전통. 여행지의 현재 사건들. 등등. 여행을 계속 해 나아가면서 내가 언급한 주제들에 대해서, 또 새로운 주제들에 대해서 글을 쌓아가고 싶다. 그 쌓인 흔적이 아마도 내가 걸어온 흔적일 것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