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5 23:01

카마수트라 조각을 보면서 한국 교회를 떠올리다. khajuraho, 1/22 - 당신의 인도를 의심하라

거대한 사원들은 종교와 권력의 어떤 공생관계를 보여주는 증표 같은 것들이다. 종교인들이 인식하든 못하든 권력과 상호보완관계를 이루는, 혹은 시대의 구조를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 종교들은 거대한 건축들을 이뤄냈다. 

권력은 종교의 물주였고 종교는 권력을 신성화해줬다. 풍요로운 종교는 부패하기 마련이었고 초창기 종교의 어떤 영적 긴장을 잃어갔다. 국가든 종교든 이러한 거대한 건축물들의 축조 후에는 망해간다는 것을 우리는 역사로부터 배웠다. 종교와 권력이 영합하는 가운데 사회적 불균형은 심해져가고 내부로부터의 갈등 때문이든 외부세력의 역전 때문이든 신흥종교의 성장 때문이든 그 사회는 몰락과 혼란의 길을 걷게 된다.

▲ 인도 카주라호의 서쪽 사원군 지난 1월 22일 인도여행중에 카주라호에 있는 서쪽사원군을 찾았다. 델리에서 남쪽으로 600키로미터 떨어진 카주라호라는 마을에 있는 서쪽 사원군은 10세기경 인도 중부지방을 제패한 찬델라왕조가 세운 힌두교 신전들이다. 다양한 성애 장면을 묘사한 조각으로 특히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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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을 다니면서 둘러보았던 아쇼카 왕의 불교 유적들부터 시작해서 인도 동부 오디샤의 칼링가 왕조의 힌두교 사원들, 암릿사르의 황금 사원, 네팔의 화려한 왕궁과 신전들은 대부분 그러한 맥락에서 위치지을 수 있다. 국가권력이 자신을의 왕권을 다지는 과정에서 종교 건축을 대대적으로 도모한 것이다. 인도나 네팔뿐만이 아니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럽의 대형 성당들, 태국의 사원들은 대부분 당시 시대, 혹은 현재의 종교와 권력의 상호공생관계의 절정을 보여주는 증표들이다. 

신라말기의 불국사 석굴암, 고려 말기의 불교계의 타락, 조선 말기의 양반들의 부패와 서원들의 문제 등은 한국의 역사도 이러한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오늘날 한국에 지어지고 있는 세계에서 손꼽는 대형교회들은 이와 얼마나 다른가. 대한민국의 CEO라는 장로대통령은 자신의 사업을 주님의 뜻이라 신성화한다.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함으로써 서울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쫓겨난 재개발을 하나님의 사업으로 만들었다. 대형교회 목사들은 이에 호응하며 거대한 교회를 세우고 풍요로운 물질적 토대를 만들어간다. 그것은 부흥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대한민국에서 부흥은 이미 영적인 부흥이 아닌 물적인 부흥, 수적인 부흥으로 변질된지 오래이다.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거대한 옛 사원들을 보면서 한 천년 후에 대한민국도 이러한 유적지가 돼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논란이 됐다가 결국 무산된 종교인과세는 이런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물론 나는 종교인들의 경제적 수준이 천차만별이며 일방적으로 종교인에게 과세하는 것이 결코 옳은 선택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종교인 과세는 다수 여론이 원하고 있는 상태다.(오해를 피하기 위해 다수여론이 지지한다고 해서 법제화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아님을 거듭 밝혀둔다. 다만 다수 여론에도 불구하고 종교세력이 국가권력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권력지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력을 쥔 집권당이 국민 다수의 여론을 등에 업고도 결국 종교세력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발 물러선 것은 한국사회에서 권력과 종교가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특정 종교와 세금문제는 아쇼카왕과 불교도들, 힌두교 왕국들과 브라만들, 무굴제국과 힌두교인들 사이에서 계속해서 문제가 됐던 낡은 이슈이기도 하다.

▲ 붓다의 탄생지인 룸비니에 아쇼카왕이 세운 석주 네팔과 인도의 국경근처에 있는 룸비니. 붓다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기원전 4세기 인도대륙에서 강력한 통일제국을 건설한 아쇼카왕은 불교국가를 천명하고 4대 불교성지에 기념물들을 만들었다. 불교를 통치기반으로 강력한 왕권을 만들고자 했던 아쇼카왕의 노력은 힌두교 기득권들의 반발로 결국 무너졌다고 한다. 저 석주에는 고대 힌디어로 "붓다가 탄생한 룸비니 마을은 세금을 면하고, 또 생산량의 8분의 1만 낸다"라고 써있다. 당시에도 세금과 종교는 어떤 연관관계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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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주라호의 사원들도 이러한 시대에 만들어졌다. 10세기쯤 중부 인도의 패권을 잡은 찬델라왕조. 찬델라 왕조는 주변 지역을 평정한 후 자신들의 왕조를 신의 왕조로 치장했다. 자신들의 전쟁은, 정복은, 통치는 신의 뜻이었던 것이다. 

인도의 꽤 오랜 역사동안 인도사회를 유지한 신분제인 카스트는 이때도 통치를 유리하게 만드는 도구였다. 무력을 갖고 있는 왕들은 신성함의 상징인 사제계급인 브라만들과 협력했다. 거대한 신전을 짓고 땅을 하사했고 종교인들을 물적으로 뒷받침했다. 브라만들은 이들을 통해 권력을 얻고 그 댓가로 그 왕들을 신성화 시켰을 것이다. 왕들은 힌두교의 최고 신들인 비슈누나 시바의 화신으로 여겨졌고 그런 흔적은 힌두교의 신들과 왕들의 초상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거대한 신전들에 잘 나타나고 있다.

▲ 앙코르와트 사원군의 사원중 하나인 베이욘 사원 지금의 캄보디아인의 크메르 왕국의 12,13세기 경 당시 왕이었던 자야바르만7세가 지었다. 크메르 왕국은 원래 힌두교 국가였으나 그는 불교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칭했다. 사원에 거대하게 새겨져 있는 얼굴들은 관음보살의 얼굴이자 왕 자신의 얼굴이기도 했다. 이처럼 중세 시대의 많은 왕들은 자신을 신의 화신으로 칭해서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하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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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무언가 엄청난 것, 신기한 것을 찾게 마련이고 그럴 때 거대한 건물들은 필수 코스가 되게 마련이다. 물론 그런 것들을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을 수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거대한 착취의 증거물인 이런 건축물들 앞에서, 종교와 권력의 유착의 상징인 유적들을 보면서 종교의 신성함과 예술의 아름다움만 찬양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하다. 

거대한 신전을 올려다보며 사람들은 실제로는 볼 수 없는 신의 위대함에 압도당했다. 지금의 눈으로도 찬란한 조각들과 장식들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어떤 스펙타클에 압도당했고 이러한 압도는 쉽게 종교에 대한 순종, 권력에 대한 복종이 됐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만 볼 수 없는 이유이다.

▲ 카주라호 서쪽 사원군에서 가장 거대한 사원인 칸다리야 마하데바 템플 11세기쯤 지어진 것으로 서쪽 사원군에서 가장 나중에 지어진 신전이다. 서쪽 사원군의 사원중에서 가장 기술적, 예술적 성취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며 시바신을 모신 신전이다. 카주라호에는 10-12세기 지어진 사원이 80여개 이상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스무개 남짓만 남아 있다. 이를 서쪽사원군, 동쪽사원군, 남쪽사원군으로 나눠 부르는데 서쪽 사원군이 그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높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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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관점에서 카주라호의 조각들을 다시 생각해보았다. 각 신전의 중심에 있는 주신들과 여기 저기 조각돼있는 다양한 종류의 신들이 종교의 어떤 신비로움이 아니라 권력을 신성화해서하려는 불순한 시도로 보였다. 

낙타, 코끼리, 말 등의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출정하는 여러 군인들, 그리고 그들이 빚어내고 있는 전쟁의 모습들은 왕들의 무력을 드러내고 힘을 과시하는 어떤 폭력의 상징으로 보였다. 가슴을 드러내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갖은 교태스러운 자세로 매력을 뿜고 있는 압사라(무희)들은 이러한 권력과 종교의 이중적인 틈바구니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성적으로 도구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 카주라호를 유명하게 만든, 남과 여의 합일이 어떻게 세상을 이루는 근본이 되는지를 보여준다는 탄트라즘으로 해석되기도 하는 다양한 성행위를 묘사한 조각들은 그저 자신들이 얼마나 정력이 센지, 혹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존재들을 성적으로 소유할 수 있는지를 과시하고자 하는 남성성의 남근적 과시로 보였다. 이러한 시각에서 아무리 봐도 저 성행위들의 주체는 여성이라기보다는 남성이었다.

▲ 카주라호의 조각 카주라호의 사원들은 인도의 많은 사원들중에서 에로틱한 조각으로 특히 유명한 곳이다. 명불허전이라고 카주라호의 거의 모든 사원에서는(한군데에만 없다고 한다) 성적인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조각의 묘사는 지극히 남성 중심적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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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의 청년사역으로 유명한 서울의 대형교회의 목사가 성추행으로 물러난 사건이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목사였고 많은 기독교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었던 만큼 이 사건은 꽤나 큰 이슈가 됐었다. 여전히 난 그 목사가 실제로 이런 일을 했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러한 사건이 목사 개인의 인격적 결함뿐만이 아닌 가부장적이고 젠더차별적인 위계에 기반한 한국기독교의 구조적 문제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양을 이끄는 위대한 목자라는 어떤 남성성의 카리스마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성적으로 복무하고(단순히 성폭행이라는 행위를 넘어서 교회의 대부분의 사역에 있어서 성역할 분리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런 구조자체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묵인하는 남성중심적인 기독교계가 이런 사건을 가능하게, 혹은 가능한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 같다.

▲ 칸드리야 마하데바 템플의 시카라 시카라는 힌두교 사원의 첨탑을 뜻한다. 이 템플의 시카라는 힌두교도들에게 신성한 산으로 여겨지는 히말라야를 형상화하는 동시에 시바신의 남근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사원의 주 신은 시바신인데 인도의 중세시절에 왕들은 자신들을 비슈누나 시바의 화신으로 포장하곤 했다. 이 신전도 그렇게 지어진 것이 아닐까. 종교, 국가권력, 젠더가 어떤 식으로 만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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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보수적이지만 속으로는 개방적인 한국인 관광객들은 야한 조각들을 보며 연신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는 그 야한 조각상들을 속으로는 좋아하면서도 겉으로는 수줍게 지인들에게 보여준다. 그리고는 종교적 신비, 출산률 증대, 악귀의 퇴치 등의 어떤 그럴듯한 해석의 틀로서 이런 '선정성'에 물을 탄다.

▲ 카주라호의 미투나상 미투나상은 성적행위를 묘사한 부조를 가르키는 말이다. 카주라호의 미투나상들은 명성대로 노골적이고 파격적이었다. 다른 인도에도 한국인 여행자들은 많지만 카주라호에선 유독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고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상업이 발달해 있다. 성에 대해서 겉으론 보수적이지만 속으로는 개방적인 어떤 양면성이 여행에서도 보이는 듯 하다. 어쨌든 간에 천년 전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오늘날만큼이나 자유 분방한 성적묘사를 성스럽게 여겨지는 신전에 새겼을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물론 그와 함께 이러한 모습이 1000년 전의 인도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도 분명히 재현되고 있는 일이란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의미있는 관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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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이런 해석들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확신할 만한 지식은 없다. 10세기 찬델라왕조의 사람들도 이러한 해석의 틀로 이 조각들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지금 이 조각상들을 보는 한국인들의 생각이, 혹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한국사회가 10세기 찬델라왕조와 얼마나 다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전근대적인 어떤 것이라고 비웃는 카스트는 한국의 양극화와 얼마나 다를까. 

한국에 세워지고 있는 수많은 빨간 십자가와 거대한 교회건물들은 군주제하의 착취의 결과인 거대한 신전들과 얼마나 다를까. 여행은 단지, 남의 찬란했던 과거만을 보는 것만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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