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3 16:46

암릿사르의 황금사원, 그리고 시크교 1/9-12, Amritsar. - 당신의 인도를 의심하라

암릿사르의 황금사원그리고 시크교.


골든템플을 바라보며 한 시크교인이 기도를 하고 있다. 시크교도들은 터번을 머리에 항상 쓴다. 물론 라자스탄을 비롯해 인도에서 터번을 쓰는 지역이 꽤 있지만 터번을 쓰는 모양이 달라서 시크교도를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시크교인이 아니더라도 골든템플지역에 들어가려면 머리에 뭔가를 뒤집어 써야 한다.

 

황금사원의 안쪽 천장도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난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벽에는 타지마할처럼 피에트라 두라 기법으로 색색의 장식들이 새겨져 있다. 가운데에는 거대한 책이 놓여있다. '그란트 사히브'라 불리는 신성한 책으로 시크교의 종교지도자인 구루역할을 한다. 그 책 앞에는 보라색 터번을 쓴 사제들이 책을 읽거나 부채를 부쳐주거나 주변을 계속해서 청소한다. 그 옆에는 시크교의 전통 악기들을 연주하는 이들이 앉아 끊임없이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는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황금 사원 전체에 울려퍼진다. 양 옆으로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역시 황금빛인 울타리가 쳐져있고 밖으로는 신자들이 줄지어 와서 신성한 책과 사원에 절을 하고 기도를 하고 제물을 바친다. 황금사원은 3층짜리인데 각 층에 이 신성한 책과 그 책을 읽는 사제들이 앉아있다. 각 층에서는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들으며, 바깥의 풍경을 보며 경전을 읽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가득이다. 앉아서 노래를 듣고,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잠시 졸다보면 시간은 절로 흘러간다. 3층은 위가 뚤린 옥상으로 파란 색 연못과 주변의 하얀 건물들을 둘러볼 수 있다. 인도의 어떤 성지에서도 볼 수 없는 맑은 파란 빛의 호수의 이름은 '암릿 사르오브'(Amrit Sarovar). 이 도시의 이름인 암릿사르의 유래가 된 연못이다. 암릿 사르는 신의 넥타르(신이 마시는 음료 혹은 술)라는 뜻이다.

 

초기 창시자인 구루 나낙 이후로 10명의 구루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엔 '그란트 사히브'라는 책이 구루가 됐다. 시크교도인들은 이 책을 신성한 사람으로 여기며 매일 새벽과 밤에 이 책을 잘 봉인해 잠자리에 보내고 또 잠자리에서 성소로 옮기는 의식을 거행한다. 걸을 수 없는 책을 위해 꽃으로 장식된 가마가 사용되며 이때 사람들은 이 가마를 함께 어깨에 돌아가면서 짊어진다. 나또한 어깨에 한번 짊어지고 나왔다. 


골든템플은 어느시간, 어느 방향에서도 아름답다.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그 그림자는 암릿 사르 연못에 비친다. 경내에 울려퍼지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시계방향으로 성스런 연못 주변을 돈다. 아름다운 사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연못에 들어가 목욕을 하며 소원을 빌고 연못의 물을 마시거나 머리에 뿌리며 축복을 빈다. 연못을 따라 걷다보면 곳곳에 성인들의 기념물, 나무, 건물 들이 있어서 엎드려 절을 한다. 주변을 구경하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황금사원에 감탄하며, 또 목욕하고 사진찍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또 시간은 흘러간다.

 

황금사원은 어느시간 어느 각도에서 봐도 아름답다. 항상 둘레를 거니는 사람이 많으며 목욕하고 기도하는 사람도 꽤 있다. 독실한 시크교도들은 시크교도이 다섯가지 K로 시작되는 상징물을 몸에 지닌다. 사진속 사람이 들고 있는 키르판이라는 이름의 칼도 그중 하나이다. 


시크교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선 신발과 양말을 벗고 머리를 가려야 한다. 그리고 각 입구 앞에는 물이 고여져 있어 발을 씻고 들어가도록 한다. 머리를 가리고 신발과 양말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곳은 한군데 더 있는데 랑가르라고 하는 무료 식당이다. 거대한 3층짜리 건물인 이곳에는 언제든 들어가면 밥과 차를 먹을 수 있다. 들어가는 길에는 이러한 식당이 신의 뜻에 의한 것임을 증거하는 말들이 쓰여 있다. 산더미처럼 쌓인 식판과 수저를 건내주는 이들이 있고 식당으로 들어가 줄지어 앉으면 달, 커리, 짜파티, 키르(디저트다. 쌀과 건과류, 버터로 달콤하게 만든다)를 무제한으로 준다. 짜파티를 받을때는 두손으로 받아야 한다. 식사는 기본적인 수준이며 때에 따라 상태는 다르지만 먹을만 하다. 가끔 후식으로 젤라비를 주기도 한다. 식사를 마치고 그릇은 설거지하는 곳에 건내주기만 하면 된다. 이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원봉사자들이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야채를 다듬고, 그릇을 씻고, 배식하고 요리를 하고 있다. 식당앞으로 나오면 수돗가처럼 생긴 곳에서 따끈한 짜이를 준다. 물병을 들고 가면 가득 채워준다. 이러한 식당은 시크교의 창시자인 구루나낙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상하계층에 관계없이 모두 함께 앉아서 밥을 먹는다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악바르도 함께 여기서 밥을 먹었다 한다. 하루에도 수만명이 여기서 식사를 하는데 그 비용이 어떻게 충당되는지 신기했다.

 

무료로 식사를 주는 사원 내의 식당의 음식. 보기엔 허접하지만 맛은 심플하고 부드러워 좋다. 무엇보다 쌀로 만든 달콤한 죽인 키르가 나는 좋았다.(사먹으려면 꽤 비싸다) 때를 잘맞추면 젤라비같은 스윗도 먹을 수 있다.


암릿사르라는 도시 자체가 시크교의 구루에 의해서 만들어진 곳이다. 람다스라는 시크교의 4대구루가 건설을 시작했고 5대 아르준때 완성됐다. 아르준은 구루직을 계승하지 못한 형을 피하기 위해 암릿사르로 거처를 옮기고 황금사원을 건설한다. 이 때부터 암릿사르는 시크교의 성지이자 펀자비주의 중심도시역할을 하게 된다. 무료 식당앞에는 람다스지 니와스와 아르준 니와스라는 이름의 숙소가 있는데 이 숙소 역시 자율기부제로 운영된다. 람다스지 니와스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도미토리가 따로 있는데 침대가 쭉 놓여있고 개인 사물함이 있다. 순간온수기에 정수기, 세탁기가 갖춰져 있어서 꽤 훌륭한 조건인데 드나드는 사람이 많고 청소가 잦아 물건이 잘 없어지니 개인 물건에 유의해야 한다. 숙소 방문을 나서는 순간 황금 사원이 내다보이는 위치는 다른 숙소에 비할 바가 아니다.


숙소의 이름은 스리 람다스 니와스. 암릿사르를 건설한 스리(신성하다는 뜻. 성, 세인트 같은 느낌) 람다스의 이름을 땄다. 입구에는 큰 초상이 걸려있는데 돈과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돼있다.

 

5대 구루 아르준은 암릿사르 도시와 황금사원을 짓는 한편 신의 책인 그란트 사히브를 만들기도 했다. 구루는 10대까지 계승되고 그 이후엔 그란트 사히브가 구루가 되어 시크교의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시크교도들은 이 책을 신줏단지 이상의 성인으로 대접하는데 매일 밤 잠자리에 보내고 새벽에는 다시 사원으로 옮겨온다. 자러 갈 때와 일어나 사원으로 올 때는 이에 맞춰서 의식이 거행된다. 사제들이 아름답게 장식된 보자기로 정성스레 싸서 꽃으로 장식된 가마에 실어서 움직이는데 이 때 사람들은 열심히 그 가마를 향해 절을 하고 가마를 돌아가면서 어깨에 한번씩 진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가마를 한번씩 짓고 나서 감격스런 표정을 짓는데 신의 축복을 받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나도 구경하려고 서있다가 사제가 가마를 한번 지라고 해서 어깨에 짊어지고 나왔다. 묵직한 무게감이 기억에 남는다.

 

시크교는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요소가 혼합된 형태의 종교이다. 유일신을 믿지만 그것이 알라와 같은 것은 아니다. 유일신 사상은 힌두교와 다르지만 윤회라든가 그 밖의 종교적 철학은 힌두교와 유사하다. 또한 어디까지나 힌두교를 믿던 사람들이 개종하여 시크교가 되는 것이었어서 힌두교 사람들은 아직도 힌두교의 한 종파로 여기기도 한다. 카스트제도나 여성차별, 우상숭배 등을 없앤 힌두교의 개혁으로 보는 것이다. 시크교의 흐름이 시작된 때는 인도에 이슬람 제국인 무굴제국이 들어올 때이며 이 때 인도에서는 무슬림과 힌두의 갈등이 계속돼 여러 가지 다양한 흐름을 만들었다. 이후 무굴제국의 정책에 따라 화합하기도 했지만 점점 박해받으며 시크교는 군대를 만들고 성을 쌓는등 국가의 면모를 갖춰갖고 무굴제국이 쇠락할 때 시크 왕국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시크교도인들은 어느시기 때 부터인가 시크교, 시크인, 시크 지방의 인도와는 구분되는 정체성을 갖게 됐고 이는 지금까지 시크교도들의 나라인 칼리스탄 분리주의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내에는 창을 든 경비원들이 항상 거닐고 있다. 이 아름다운 황금사원은 84년도에 칼리스탄 분리주의자들에 의해 점거됐고 인디라 간디가 이를 진압하며 3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죽은 장소이긴 하다. 시크교도는 원래는 평화주의적인 교리를 갖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무굴제국과의 분쟁 등을 겪으며 군사화 됐다. 이들의 용맹은 인도에서도 유명해서 인도군인들 중 시크교도가 상당히 많다. 인디라 간디를 암살한것도 그의 경호원이었던 시크교도들.


시크교도의 특징중에 우상숭배 금지와 복잡한 종교 의식을 없앨 것 등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 그랜트 사히브가 잠자리로 가고 사원으로 다시 올 때의 의식을 보면 그랜트 사히브라는 존재가, 또 황금사원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물신화 됐는지 엿볼 수 있다. 또한 사원의 화려한 장식들이나 연신 돈과 천을 바치는 사람들, 그리고 사제들이 신성한 책에 행하는 행동들의 면면을 보면 복잡한 종교 의식이 없어졌는지는 의문이다.


그란트사이브가 자러갈때 가마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많다. 시크교는 힌두교와 달리 물신숭배를 금지했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시크교도들의 그란트 사이브에 대한 숭배를 보면 물신숭배가 없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은 든다. 십자가에 집착하는 기독교인을 비롯해 물신숭배 없는 종교를 본적이 거의 없는 듯 한데 자기 존재를 눈에 현존하는 무엇인가에 의존하고 복을 빌고자 하는 어떤 욕망의 투사대상인 물신숭배는 종교의 기본 속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무굴 제국 이후에 암릿사르에는 두 번의 굵직한 폭력사태가 있었다. 한번은 1919년의 영국통치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다이어라는 영국 장교가 광장에서 평화적으로 시위하던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발사한 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죽었다. 이 사건을 비롯하여 암리차르 곳곳에는 영국의 식민통치에 저항하던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잔혹한 진압의 얘기가 얽혀있는 거리들이 있었다. 시크교도들은 원래 영국과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 사건을 결정적 계기로 해서 인도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결합했다고 한다. 또 한번의 폭력사태는 1984년에 있었다. 이는 시크교도들의 분리주의가 최고조에 달해서 황금사원을 시크교도인들이 점거했을 때 당시 수상이었던 인디라 간디가 7만명의 군인을 동원해서 전원 사살한 사건이다. 블루스타라는 작전명으로 이뤄졌던 이 사건은 시크교도들의 공분을 샀고 결국 인디라 간디 수상은 시크교 경호원들에게 암살당한다. 암살 이후 델리를 중심으로 시크교도들에 대한 집단적인 폭력사태가 벌어졌고 수많은 시크교도들이 이 때 살해와 방화, 약탈, 강간을 당했다.

 

사실 이번 암릿사르 방문에서 1984년 사태로 상징되는 힌두인들과 시크교인들, 즉 펀자비 사람들의 긴장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도 있는데 의외로 잘 느껴지지 않았다. 1919년 사건이 공원으로 만들어지고 여러 가지 기념물과 상영 등으로 계속해서 언급되는데 반해서 1984년 사건에 대한 기념은 잘 듣지 못했다.


영화 <비르 자라> 인도군인과 파키스탄 여성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로맨스는 지루하기도 하고 너무 과장되기도 하고 해서 별로지만 이런 얘기들 틈에 인도와 파키스탄의 여러 갈등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문제, 인권변호사의 얘기 등등이 나와서 꽤 흥미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인도최고의 배우인 샤루칸의 연기도 재미다.

 



암릿사르로 가는 기차에서 <비르 자라>라는 인도영화를 봤다. 인도영화 최고 스타인 샤루칸 주연의 이 영화에서 그는 비르 싱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이 영화에서 그의 고향은 펀잡으로 나온다. 펀자비는 시크교도들이 자신들의 땅으로 생각하는 곳이며 싱이라는 이름은 시크교도들이 자신들 이름의 끝에 붙이는 이름이다. 할머니의 유언이라든가 샤루칸의 아버지가 쓴 터번등으로 미뤄볼 때 샤루칸은 시크교도로 등장한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영화에서 샤루칸의 직업인 군인 또한 시크교도들의 주 직업이기도 하다. (샤루칸은 <신이 맺어준 커플>이라는 영화에서도 시크교도로 나오며 이 영화의 배경은 바로 암릿사르이다) 영화에서 비르(샤루칸)는 인도 공군의 대장으로 나오는데 파키스탄 여성을 구조하고 다시 만나게 되면서 사랑에 빠지는 흔한 로맨스 영화다. 하지만 인도인과 파키스탄 사람이 국경을 초월해 사랑하게 된다는 어떤 통합의 메시지가 있는데 여기에서 펀자비인, 시크교도로서의 정체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 속 비르는 계속해서 자신의 조국인 인도를 언급하며 은연중에 분리가 아닌 통합을 말하고 있었다.


황금사원의 이층에는 아래층의 음악연주와 사람들의 기도, 그란트사히브를 읽는 사제를 내려다보며 경전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저난간에 앉아서 한나절동안엔 책도 읽고 멍도 때리고 음악도 듣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조금 졸기도 하고 했다. 아늑하고 편안해서 멍때리기 너무 좋은 곳이다. 하지만 성지에서도 중심 구역이라서 뭔가 까페처럼 죽치기에는 죄스런 맘이 들기도 한다.

 

34일간의 짧은 방문으로 시크교와 펀잡 사람들에 대해서 알수 있는 것은 한정돼 있을 것이다. 게다가 시크교에 대해서는 일전에 정보도 거의 갖고 있지 못했다. 34일간의 암릿사르 방문으로 시크교라는 새로운 종교에 대해서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됐고 이를 둘러싼 인도와 파키스탄, 인도와 펀잡, 힌두교와 시크교, 무슬림과 힌두교 등의 갈등관계에 대한 관심이 시작됐다. 이에 대한 또 다른 얘기와 암릿사르의 다른 매력들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잇도록 하겠다.



다음은 또 다른 사진들.


우리는 암릿사르로 바로 가는 기차를 타지 못했다. 굉장히 붐비는 노선인데 당일에야 표를 구하려 했기 때문이다. 친절한 티켓 창구 직원의 안내로 잘란디르라는 60키로 떨어진 도시로 가는 야간열차를 타고 거기서 열차로 2시간정도 이동했다. 이미 잘란디르에 도착했을 때부터 암릿사르로 가는열차에는 시크교 특유의 터번을 쓴 사람들로 가득해서 시크교 성지에 가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암릿사르 거리에도 터번을 쓰고 자전거를 타고 오토바이를 타고 인력거를 쓴 사람들이 넘쳐난다. 신기한 모습이었다 내게는.

기차역 앞에 있는 골든템플로 가는 무료 셔틀버스 줄. 15분에 한번씩 온다.

매일 수만명의 음식을 담당하는 사원내의 식당. 부엌에서는 욕조보다 큰 크기의 솥에서 여러가지 음식들을 연신 만들어낸다. 
식당 앞에는 먹을 것에 대한 구르들의 말씀이 가득히 적혀있다. 그래, 굶지는 말아야지. 종교라면.

저 긴 양탄자에 사람들이 앉아서 쭉 식사를 한다. 사람들이 쭉 지나가면서 음식들을 쭉 주는데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빠지면 저런 차로 청소를 또 쭉한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같은 기분.

설거지를 하는 모습. 여기 설거지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라 한다.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선 누구나 맨발이어야 하고 물에 발을 씻어야 한다. 

짐을 풀고 처음 경내에 들어갔을 때의 풍경. 파란 하늘에 흰 건물에 파란 연못 가운데 황금빛 사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사원을 바라보며 신성한 연못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물은 계속해서 청소를 하는지 깨끗해보이며 커다란 물고기들도 살고 있다. 안전을 위해 깊은곳에는 펜스가 쳐져 있으며 쇠사슬이 달려있어 붙잡고 들어간다. 초창기 구루들은 힌두교인들이 신성한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했다고 들은 것 같은데 확실하게는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기독교의 침례, 힌두교의 목욕 등 많은 종교에서 물은 정화의 의미를 지닌다.

황금사원으로 들어가는 다리. 하루종일 긴 줄이 서 있다. 

한쪽 경내에선 시크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앞에 사람들이 많이 앉아 노래를 듣고 있다.

그리스가 이런 색깔일까.

경내를 지키고 있는 창든 경비원

사원쪽으로 절하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원의 북동쪽이 메인 입구인데 그쪽에 사람들이 제일 많다.


해가 질때쯤의 풍경. 건물들때문에 떨어지는 해를 잘 볼 수 있지는 않으나 기울어가는 햇빛을 받는 황금사원의 찬란함은 다른 시간대보다 아름답다.
저렇게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라고 써있다. 그렇게 앉아있지 않으면 누군가 주의를 주기도 한다.

딱히 외국인 관광객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대부분 황금사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표정이 예뻤던 한 여성.



밤 9시 40분. 신성한 책이자 구루인 그란트 사히브가 자러가는 시간이다. 책이 실려있는 가마 행렬에 보랏빛 터번을 쓴 사제가 앞장 서고 있다.

가마는 꽃으로 화려가헤 장식한다.

깃털로 된 부채, 여러가지 쿠션, 꽃 등 장식하며 의식을 거행하는데 주변 시크교인들은 경건한 표정으로 그 의식을 돕거나 지켜보거나 기도하고 절한다.
돌아가면서 가마를 한번씩 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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