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23 00:51

카주라호에 앉아 인도를 생각하다. 1/22 - 당신의 인도를 의심하라

카주라호의 서쪽 사원군



 

잔뜩 먹을 것을 사들고 들어와서 벤치에 앉아서 먹었다. 그리고는 영문 해설서와 가이드북을 들고 차례차례 사원을 둘러보았다. 이 사원들은 10세기쯤 중부 인도의 패권을 잡았던 찬델라 왕조의 왕들이 왕위를 계승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지은 것들이다. 후대로 갈수록 힘은 세지고 기술은 발달했는지 보다 아름다워지고 보다 거대해졌다.

 

카주라호의 석굴사원은 특별히 야한 부조로 유명하다. 사원들의 기단과 벽에는 성행위를 묘사한 부조가 아주 많았고 노골적이었고 그 모습도 다양했다. 혼자 자신의 몸을 만지는 여성, 말에게 삽입하는 남성, 여럿이서 성행위를 하는 모습, 남성끼리 성행위를 하는 모습, 서로의 성기를 만지거나 오럴을 하는 장면 다양한 모습이 있었다.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과 정교한 조각에 감탄하며 왜 이런 것들이 신성한 사원에 새겨져 있는지 저마다의 생각을 해보는 모습이다.

 

하지만 야한 부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사원들에는 왕족이나 궁정 무희들의 일상도 새겨져 있고 이들이 믿었던 다양한 신의 모습도 새겨져 있다. 또한 코끼리, , 낙타등과 함께 하는 전쟁과 군대의 모습도 다양하게 새겨져 있다. 섹스는 이들에게 어떤 특별한 신비가 아닌 전쟁과, 일상과, 종교와 함께 삶의 다양한 측면을 기록해놓고 장식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히려 이러한 성행위 조각들을 유별나게 생각하고 무언가 비밀스럽고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후 사람들에 의해서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회에서, 심지어 이 조각이 있는 인도사회에서도 억압돼있는 성적인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그것들이 출산율을 위한 경제적 이유, 어떤 남녀의 합일을 뜻하는 세계의 원리라는 형이상학적 이유, 종교적인 의식이나 상징이라는 종교적 이유 때문이라고 하며 그들의 생각 속에 받아들인다. , 어떤 이유가 있어야지 그것은 외설이 아닌 예술이 되고 의미있는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어떤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10세기쯤에 이것들을 조각한 장본인들도 이것들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부터 성적인 것들을 신비롭고 비밀스럽고, 출산이나 생산을 위한 신성한 어떤 것으로 생각했을까. 인간의 다양한 삶의 측면으로서 자연스럽게, 호들갑 떨지 않고 받아들일 순 없었을까. 살기 위해 필요한 식사라든가, 잠이라든가, 배설을 우리는 야하고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진 않지 않는가.

 

찬델라 왕조는 이후 스러져갔다.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 국가들과, 남부 인도, 서부 인도의 군주국들과의 각축으로, 또 영국등의 제국주의 국가들의 진출속에서 인도는 숱한 흥망을 겪었다. 그리고 이 광할한 땅에서 일어난 수많은 세력들의 흥망과 갈등을 인도라는 이름으로 묶을수도 없는 것 같다. 한국처럼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어떤 일관된 흐름으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함이 이곳에 존재한다. 이들이 함께 인도라는 정체성을 갖게된건 채 200년도 안됐다고 한다. 시크교의 펀잡, 자인교의 구자랏, 무슬림이 많은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그리고 힌두교와 그밖의 종교들이 많은 나머지 지역들을 두루 다니면서 인도는 종교와 민족과 국가와 그리고 많은 사상들이 어떻게 갈리고 합쳐지고 만들어지는 지 관찰하기 무척 좋은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영광만이 허망하게 남아있는 햇살 좋은 카주라호 서쪽사원군의 잔디밭에 앉아서 햇살이 변함에 따라 변하는 사원들을 바라보며, 오늘 새로이 심어진 색색의 꽃들을 눈에 담으며, 또 옆에 와서 누운 배가 불룩한 누런 개를 쓰다듬으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해본다



담번에 사진하고 글을 좀 더 정리해서 카주라호에 대한 기록을 남겨놔야겠다. 오늘은 일단 이정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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