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4 17:33

분에 넘치는 환대 1/3 - 우리가 아직 몰랐던 네팔

점심을 다 먹고 집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을 P가 보면 반가워했으면 좋겠다.


T는 한국에서 6년을 일했다. 한번은 산업연수생으로 들어갔다. 그의 나이 28살때였다. 1년을 합법적으로 일했지만 돈은 모이지 않았다. 한 달을 일하고 이것저것 다 떼이고 나면 남는건 30만원이었다. 그는 그 시대 다른 많은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불법체류자가 됐다. 불법이지만 수입은 좋았다. 한달에 90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그렇게 2년을 더 일하고 네팔로 돌아왔다.

 

그는 다시 한국에 갔다. 가족 비자든지, 학생 비자든지 한국에 들어간 것 같다. 그리고는 불법으로 취업을 했다. 염색공장에서 일을 할 땐 냄새도 심하고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청바지 공장에도 있었다. 한국사람들과 일을 하며 한국어를 익혔다. 경력도 쌓이고 한국어도 곧잘 하는 그는 한달에 150만원을 벌었다. 외국인 노동자 치고는 좋은 월급이다. 3년이 됐고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오는게 아쉬웠을 것이다. 그는 한국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한다. 어느 덧 30대가 끝나가는 그는 나이때문에라도 한국에 가는게 쉽지 않을거라 아쉬워 한다.



 

그의 집은 포카라에 있다. 관광객들이 붐비는 레이크사이드의 중심부에서 멀지 않다. 집도 햇빛이 잘보이는 반듯한 집이다. 그가 하는 보석가게는 벌이가 괜찮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계속 가고 싶어했다. 그는 무스탕이라는 지역 사람이다. 무스탕은 티벳과 접하고 있는 네팔땅이다. 불교도이고 생김새나 말씨가 티벳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한국에서 6년간 일하고 온 T. 한국말이 꽤 유창하다. 왼쪽은 그의 아내 S. 못본지 15년이 된 동생에게 보낼 선물을 정성스레 포장해줬다. 

 

그의 아내 S는 동생에게 보낼 목걸이를 정성스럽게 포장했다. 슝디라고 하는 그 목걸이는 나이가 찬 무스탕 남성들은 걸어야 하는 종교적인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한국에 있는 동생이 그 목걸이를 걸고 다녀야 할텐데 몇 번 사람을 통해 보내려 했는데 못보냈다고 한다. 우리가 한국에 갈 때 가지고 가서 그녀의 동생에게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목걸이와 함께 무스탕 지역의 메밀가루를 같이 전달해달라고 한다.

 

그녀의 동생 P는 벌써 15년 전에 한국으로 떠났다. 한국으로 돈벌러 갔을 그는 떠난 후에 다시는 네팔에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못했다. 불법 체류자 신분이 된 그는 네팔에 돌아오면 다시는 한국에 돌아가지 못한다. 그는 한국에서 계속해서 살아갈려고 한다. 한국의 한 공장에서 일하는 그는 더 이상 한국인들이 하지 않으려 하는 힘든 일을 묵묵히 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를 한번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한 네팔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해서 아이도 낳았다.

 

나는 그의 아내 C의 친구이다. 자주 만난 건 아니지만 5년째 그녀를 알아왔다. 예전 여행 때도 그녀의 가족들에게 환대를 받았었고 이번 여행때는 아예 그녀의 네팔 집에서 머물고 있다. 즉 그 부부의 집이다. 주인은 없고 여러 가지 한국 물건이 곳곳에 있고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의 부부의 사진이 걸려있는 방에서 머물고 있다. 이곳엔 그들의 아들 W도 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법적인 제약으로 한국에서 살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애기 때 네팔로 와서 그의 외할머니와, 삼촌과, 숙모와 사촌과 함께 살고 있다. 그를 돌보는 건 아빠의 조카, 그러니까 사촌 누나이다. 엄마아빠와 떨어져서 살고 있지만 내가 그를 볼 때 마다 항상 해맑게 웃는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P에겐 세명의 남자 형제가 있다. 첫째 형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장사를 한다. 나머지 둘은 라마가 됐다. 한명은 무스탕에서 한명은 남인도에서. 남인도에서 라마생활을 하고 있던 U를 며칠 전에 우연히 만났다. 레이크 사이드의 한 가게에서 만났다. 그는 자신의 형을 아는 우리를 너무도 반가워했다. 그는 원래는 남인도의 곰빠에서 승려생활을 하지만 몸이 좋지 않아서 네팔로 와서 몇 달간 요양중이었다. 그는 94년도에 라마가 되려 인도로 떠났는데 98년도에 형이 편지 하나만 남기고 한국으로 떠났다 했다. 아마도 그가 인도로 떠났을 94년도엔 상상도 못했겠지만 그 후 20년간 그는 형을 보지 못했다. 네팔에 몇 년에 한번씩 왔다 가는 형의 부인만 두어번 봤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우리는 반가운 손님이었을 것이다.


남인도의 티벳탄 캠프에서 라마생활을 하는 U. 몸이 안좋아 몇달간 가족들이 있는 포카라에 있다. 그는 샤카종파인데 샤카종파는 무스탕 사람들의 종파이다. 우리가 티벳 불교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고 의상에 대해서 얘기 하다가 직접 옷을 꺼내 입어보인다.

 

U는 다음날 우리가 묵고 있는 방에 왔다. 같이 찌야도 끓여먹고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었다. 다음날 자신의 집에 오라고, 자신이 음식을 만들어준다고 했다. 우리는 함게 뚝바와 모모를 사먹고 헤어졌다.

 

다음날 우리는 U가 묵고 있는 집에 갔다. 그 집은 그의 누나인 S와 그녀의 남편 T의 집이다. 그들은 아마도 귀한 손님에게 내어주는 용도일 환타를 내었고 따뜻한 찌야도 내줬다. 그리고 전날 우리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했던 샤박레를 잔뜩 내줬다. 샤박레는 큰 만두같이 생긴 음식인데 속에 버프고기를 넣고 튀기는 음식이다. 만들기 쉽지 않은 음식이고 준비하느라 품을 꽤 들였을 것이다. 샤박레를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우리는 배가 부르기도 했고 왠지 내온 샤박레를 다 먹으면 더 내올 것 같아서 몇 개를 남겼다. 그랬더니 남긴 샤박레를 싸주기까지 했다. 많은 얘기를 나누진 않았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T와 한국에 대해서 여러 얘기를 하고 한국에 있는 P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다. 그리고 P에게 보낼 선물을 싸줬다.


점심으로 먹은 샤박레, 버프 숩. 여기에 버프 고기 볶음도 같이 내줬다. 녹색 소스는 고추와 이런 저런 향신료로 만든 소스. 

 

우리는 분에 넘치는 환대를 받았다. 그것은 아마도 15, 20년간 보지 못한 그들의 가족 P에 대한 그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얼마 안되는 메밀가루와 작은 목걸이이지만 이것은 아마도 P에게는 가족과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선물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나는 이것을 전해받을 그의 얼굴이 상상돼서 마음이 설렌다. 아마도 P가 볼 수 있을 사진을 우리가 대문을 나오며 함께 찍었다. 그들 가족은 내 카메라를 보고 섰지만 아마도 P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있고, 그곳에서 가족을 만들고, 법이라는 벽 앞에서 왕래하지 못하고 가족과 함께 살지 못하는 그들 사이에서 아주 조금이지만 서로 무언가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소식을 전하도록 조금의 역할을 해서 기쁜 하루였다. 그리고 티벳 음식중에서 내겐 가장 특별한 샤박레를 넘치게 먹어서도 즐거운 하루였다. T는 내게 다음에 포카라에 오면 자신의 집에 묵으라고 거듭 얘기했다. 자기랑 한국말로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면서 며칠 쉬고 가는거 괜찮다고 언제든 전화하라고 거듭 말을 했다. 고마웠다, 모든게.


그의 집엔 손님방이 있었다. 여기 앉아서 이런저런 음식을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 점심시간을 조금 넘겨서 가게 돼서 같이 먹지 못하고 우리만 먹었다. 보통의 네팔 사람들은 아침 식사는 간단한 차로 대신하고 11시쯤 배부른 식사를 한다. 해질 녘 쯤 간단한 간식을 먹고 밤 8-9시쯤 저녁을 먹는다. 

그의 둘째 아들 N. 첫째 아들은 처음 한국에 가기 전에 낳았고 이 아이는 태어난지 6개월 밖에 나지 않는다. 젊은 시절중 많은 세월을 일하면서 보낸 그의 두 아이는 나이차가 10살이 넘게 난다.


우리를 배웅해주는 T. 그의 집은 페와 호수에서 멀지 않고 햇빛도 잘 든다. 다음에 포카라에 오면 언제든 와서 머물다 가라고 거듭 말해줘서 고마웠다.


처음 U를 만날 때 그는 K의 가게 앞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유심히 보면서 몇가지를 묻더니 그의 형과 아내를 아는 사람인 걸 알고 매우 반가워했다.

라마이지만 평복을 입고 있으면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이다.

다음날 우리가 묵고 있는 방에 찾아온 U와 함께 뚝바와 모모를 먹었다. 포카라의 프리스비 촉 근처의 티벳탄 난민 캠프 앞에 있는 식당. 조촐하고 메뉴가 적지만 국물이 진국이다. 가격은 뚝바 60 모모 60. 둘다 버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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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dyanos 2013/01/05 00:47 # 삭제 답글

    녹녹하지 않은 삶을 사는 그들이 그 역경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이 느껴지내요. 이런 에세이(?)를 좋아하는데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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