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01 20:32

운동의 분화; 인권운동과 정체성, 소수자, 당사자 운동의 긴장 느끼고 생각하며

다양한 운동이 있다. 그 운동은 하나의 범주로 묶이지만 그 운동 내부에는 여러 다른 생각과 활동방향,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앰네스티라는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하다가 병역거부운동이라는 것에 참여했었고 청소년 운동과 이주노동자 운동에는 여러 계기들로 이런 저런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운동들에 비슷비슷한 결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인권운동과의 긴장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병역거부운동 내부에서 인권운동과 평화운동의 긴장은 꽤 오래된 이슈이다. 흔히 대체복무제와 병역거부권으로 대표되는 것이 인권운동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양심에 따라 집총을, 군복무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 주요한 주장일 것이다. 인권운동은 주로 제도의 개선이 주 목적이 되는 것 같다. 징병제 하에서 대체복무제를 개선하여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도 군사훈련이 없는 대체복무제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인권침해를 당하는 피해자가 부각된다는 것이다. 이 피해자들은 우선 부당하게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어야 하고 인권을 가질만한 자격이 있게끔 여겨져야 한다. , 무고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병역거부자들은 봉사활동을 하거나 신앙심이 깊거나 병역거부만 아니면 착하게 문제없이 잘 살아갈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대체복무제라는 당면과제 앞에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잘 드러나지 못했다. 우선 현행 징병제를 보완하는 성격인 대체복무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입증하는 발언을 붙여야 했다. 징병제 폐지라든가, 병역거부와 병역기피에 대한 여러 의견들, 각 개인이 갖고 있는 개성이나 정체성 등은 잘 드러내지 못한채 우리들은 양심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특성들만 전략적으로 드러내애 했다. 그러한 전략을 스스로가 의도하지는 않더라도 여론에 대한 어떤 고려나 언론 등의 취사 선택에 의해 그러한 경향은 만들어져 갈 수 있다.

 

병역거부운동을 주도 했던 전쟁없는세상은 이러한 긴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체복무제라는 단기적인 성과가 목전에 있었던 2008년부터는 이러한 분화가 시작됐던 것 같다. 하지만 대체복무제가 뒤집어지고 나서 그 분화는 탄력을 받지 못했던 것 같고 각기 다른(서로 대립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방점을 찍는 부분이 다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사람들이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운동에 있어서 대체복무제와 같은 것은 고용허가제였던 것 같다. 어쨌든 간에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의 노동자들과 같은 법으로 보호받고 최소한의 인권을 지킬 수 있게 하는 제도였던 것 같다. 대체복무제가 좌절된 것과 달리 고용허가제는 노무현때 통과됐다. 하지만 통과 이후 시작됐던 명동성당에서의 농성은 끝내 운동의 두가지 흐름의 결별로 귀결됐다. 나는 이 결별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단기적인 성과가 성취된 후에 그 성과를 보완,개선시켜나가려는 운동과 그 성과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고드는 운동의 분화는 일견 자연스러워보인다. 어쨌든 고용허가제 이후 이주노동자 운동은 기존의 인권운동에서 노동자들의 정체성을 갖고 당사자들이 운동하는 노조운동이나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의 차이를 중시하는 여러 연구들이 시작된 것 같다.

 

청소년 운동에서는 학생인권운동이 어떤 상징적인 제도라고 할 수 있겠다. 내부에서의 여러 결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운동에서 제일 부각된 이슈는 학생인권조례일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우선은 진보교육감들과 서명운동의 성과로 성취됐던 것으로 간주됐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고 제도가 시행돼서 여러 가지 성과들이 있었다. 운동주체들은 학생인권조례의 성공적인 정착 실행을 위해 정부나 다른 큰 단체들과 협력하는 사람들과 학생인권조례 이외의 다른 이슈들 나이주의나, 선거권등 다른 이슈들에 주목하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물론 선거권은 또다른 인권문제라는 점에서 인권운동적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내 생각에는 단기간에 제일 부상할 수 있는 주제인 것 같다. 하지만 보수정권하에서 인권조례는 위기거나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태가 됐었고 이수호 교육감, 박근혜 대통령, 새누리당 다수당 상황에서 여론적, 권력적으로 불리해졌다. 아마도 다양한 분야의 청소년 활동가들은 다시 학생인권이라는 당면과제에 대한 결집을 요구받게 되지 않을까.

 

빈집 운동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빈집은 소유나 주거, 노동이나 화폐, 생태 등의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실천들을 던지고 있다. 또한 어떤 운동 세력이 되기에는 단체라든가 역량이 부족한 시점이다. 하지만 빈집운동은 주거권이나 환경권 등의 인권이슈와 잘 연결 될 수 있기에 그런 운동들과의 만남을 예상해볼 수 있다.

 

인권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박원순 시장 당선이후 서울에서는 마을만들기 등의 문화산업이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정부가 이러한 운동과 만나게 되면서 빈집도 그 영향을 받게 됐다. 어떤 제도를 개선, 성취해서 정부와 협력하게 되는 것은 운동의 역량과 방향에 꽤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선 사용할 수 있는 힘들이 많아지고 그 결과로, 또 그 운동의 이슈 부각으로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는 운동 주체들에게 단기간에 운동의 일정한 목표를 성공할 수 있을거라는 예상을 하게 해줄 것이다. 하지만 대개 부각되는 이슈는 운동주체들 중 일부가 갖고 있는 보다 근본적이라거나 본래의 취지 등과 갈등을 빚을 때가 있을 것이고 어떤 쪽으로 방점을 찍을 것이냐가 그 운동주체들의 고민이 될 것이다. 빈집에 최근 있었던 어떤 갈등은 이러한 시각으로 구조화 해서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운동을 오래 한 사람이 아니고 어떤 운동에서도 중심적 인물이 된적이 없다. 다만 내 인생에서 어떤 시점에 내 관심의 방향에 따라 몇 개의 운동을 살펴봤고 나름대로 어떤 경향성을 느껴서 스스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요약하자면 1)운동에는 인권운동 혹은 법제도개선운동과 근본적운동, 정체성, 소수자 운동의 긴장이 있다. 2) 운동의 초기엔 전자에 집중하고 전자가 부각된다. 3) 내부적으로 후자의 생각이 늘어나면서 불만 혹은 긴장이 커져간다. 4)단기적 법제도 개선, 정부와의 협력등의 성과가 나면 운동주체들의 선택이 요구되며 기존의 긴장은 운동의 분화로 이어진다. 5) 단기적 법제도 개선, 정부와의 협력 등이 무산되거나 뒤집어지면 분화된 운동은 일종의 (표면적으로는) 정체상태가 된다.

 

법치국가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운동에서든지 법제도 개선운동이 주류가 되는 것은 일견 당연해보인다. 주류 운동은 자금적으로, 사람수 면에서, 여론의지지 측면에서 훨씬 더 역량이 큰 건 당연할 것이다. 정체성, 소수자, 당사자 운동들과 이 인권운동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협력과 긴장상태를 유지하느냐가 어떤 운동에서 그 운동이 얼마나 건강하고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관건이 될 것이다. 또한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운동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이러한 운동의 흐름에 대한 이해와 논의를 명확히 한다면 서로의 관계가 갈등이 아니라 적절한 긴장이나 협력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앰네스티는 인권단체로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이고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인식이 분명해보였다.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전체 운동의 그림과 운동에서의 자신의 역할과 위치, 앞으로의 흐름과 계획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보다 주체적이고 즐거운 운동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수는 물적토대로 결집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다. 무언가를 개선하고 변화시켜나가려는게 진보라면 분열은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다른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분열은 무조건 독이라기보다 어떻게 분열하는가에 따라 진보의 근본적인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분열이 분화가 되고 성장이 되길 바라며 어설픈 분석글을 끝낸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혹여나 이글을 보고 비웃거나 화나거나 슬퍼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되지만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두고 싶었다. 이 글을 바탕으로 고쳐나가고 생각을 가다듬어나가면 되지 않을까.

 

 


덧글

  • 2013/01/02 00:0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아르 2013/01/02 05:22 # 답글

    우선 질문. "근본적"이라 함은 탈군사주의를, "정체성"이라 함은 노동자성을 (이 경우 identity politics와 혼돈을 줄이기 위해 계급적 정체성이라 확고히 사용하는 게 나아 보임. 실제로 identity politics는 마르크스의 계급 정체성 착안해 발전한 감도 있지만 계급에 방점을 찍는 입장에서는 계급의식에 대한 집중을 저해한다고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하니.) 각각 뜻하고자 한 것 같은데, "소수자" 는 정확히 어떤 지점을 지적하고자 함인지 잘 와닿지 않는다.

    그리고 지적. 병역거부운동 입장에서 기술한 인권운동의 형상이 잘못된 이해를 이끌 수 있는 지점이 우려스럽다. 가령, "인권을 가질만한 자격"같은 표현. 인권개념의 대전제는 인권은 '자격'에 무관하게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부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병역거부자의 잇다른 무차별적 수감을 막기 위한 시급한 운동(이는 엄밀히 말하면 보편적 의미의 '인권운동'이라기보다는 인도주의적 착안에 가깝다고 본다. 물론 차후 인권운동과 교차한 지점도 분명히 있다.)의 전략 차원에서 어떤 레토릭을 사용했는지와는 무관하다. 이 지점을 충분히 섬세하기 기술하지 않을 경우 개념에 대한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 주지하듯 인권체제 하의 병역거부권 및 대체복무제 요구는 병역거부자들이 "무고하고 선량한 사람들"이며 '양심적'이라는 점에 호소하지 않는다.
  • 들깨 2013/01/12 00:26 #

    정체성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제가 엄밀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굳이 계급적 정체성을 염두에 둔 건 아니에요. 둘의 차이가 어떻게 되나요? identity politics가 제 의도와 더 닿는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사실 개념에 대해 이해를 잘 하고 있지 못해서...

    소수자라 함은 여성, 장애인, 이주노동자등의 minor group을 염두에 둔거에요. 근데 어떤 집단의 대표되는 대의나 동질성같은 것 보다는 그 집단 내에서 차이나 정체성을 더 드러내는? 그런 느낌이랄까.

    사실 인권운동 이후에 어떤 운동들이 있는가 생각해보면서 정체성, 소수자, 근본적 등의 들어봄직한 용어들을 끌어다 쓴거지 엄밀한 개념적 이해가 동반된 건 아니에요. 이에 대해서 심심한 사과를.

    저도 인권'개념'의 대 전제에는 동의하지만 한국의 '인권'운동이 그리고 다양한 운동 내에서 '인권'운동적 흐름이 인도주의적 경향을 갖고 있다는 것도 맞지 않을까요? 저는 그 전략과 레토릭이 한국의 시민운동을 (적어도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해서는요. 이는 운동주체들의 전략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언론이나 정치권과 맞물리면서 일어난 현상이기도 하겠죠) 어느정도는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는 듯 했어요.

    인도로 넘어오면서 인터넷 접속이 원할치 않네요. 늦은 답과 부실한 글에 사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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