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02 13:39

더러움을 마주하기, 12/1 바라나시 여행 중 단상

이건 그냥 써놓기만 했는데 마침 위클리 수유에 관련된 얘기가 나와서 링크를 걸어놓음. 물론 이건 뒷물에 대한 얘기고 링크건 글은 똥거름에 대한 얘기지만 '똥의 더러움'에 대한 참고할 만한 얘기가 나옴.


수세식변기로 똥거름 만들기

http://suyunomo.net/?p=10908




12/1 손으로 똥을 닦는 것은 더러운가






 

화장실에 어느 때 부터인가 그냥 간다. 내 말은 휴지를 들고 가지 않는 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화장실엔 휴지가 없다. 변기 근처에 수도꼭지가 하나 있고 작은 바가지가 하나 있다. 볼일을 보고 나면 내 손으로 바가지에 있는 물을 떠서 뒤를 닦는다. 처음엔 (물론 여기서 말하는 처음은 태어나서 처음이 아닌 항문을 손으로 닦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 이후 처음이다) 내키지 않았지만 금새 적응됐고 이젠 별 생각이 없다. , 익숙해지면서 뒤를 닦을 땐 왼손만을 사용하는 규칙을 몸에 익혔다. 오른 손으론 밥을 떠 먹어야 하니 말이다.

 

이 글을 읽고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게다. 한국사람이면 십중팔구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느 것이 더 더러운지는 따져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휴지로 밑을 닦는 삶은 똥묻은 휴지를 대량으로 만들어 낸다. 그 하얗고 올록볼록한 휴지를 만드는데 들어가는 공까지 염두에 두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땅은 휴지로 밑을 닦을 때 더 더러워지는 것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 더러움이라는 감정을 잘 마주하고 나면, 그리고 그 감정이 생각외로 별건 아니라는 느낌을 갖고 나면 일어나 세수하듯, 코에 손을 대서 풀 듯, 밥먹고 양치하듯 밑도 씻어주면 그만이다. 뻑뻑한 휴지로 닦는 것보다 건강에도 좋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인도와 한국은 환경이 다르긴 하다. 손으로 밑을 닦을 수 있는 어떤 환경을 살펴보자면 어느 화장실에나 왼손이 닿는 곳에 물바가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대부분 풍부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기 때문에 똥의 질감이 달라서 항문자체가 별로 더러워지지 않는 것도 하나의 요소이다. 다른 사람도 다 나처럼 한다는 사회적 압력또한 이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게 하는 큰 이유가 될 것이다.

 

왜 우리는 손으로 항문을 닦는 것을 더럽다고 생각하게 됐을까. 왜 똥이 묻은 휴지를 산처럼 만들어내는 것은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왜 휴지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고, 각종 시약을 쓰며 물을 더럽히고, 그 종이를 운송하기 위해 공기를 더럽히는 것은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분명 같은 더러움인데 말이다. 이 감정적인 것은 어떻게, 왜 만들어졌을까. 물론 인간이 위험한 병균들, 배설물, 그러한 것들을 옮기는 것들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생물학적인 분석을 본적은 있다. 흥미로운 분석이지만 인간의 모든 행위를 본능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기도 하며 또 맞지 않을때도 많다고 생각한다. 본능이란 것이 그토록 강력하다면 왜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지구를 더럽히지 않는 본능은 없을까하는 의문도 든다.

 

이도 저도 모르는 것 투성이지만 확실하게 드는 생각 하나는 우리가 갖고 있는 더러운 감정이라는 것, 그로 인해 챙기는 위생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표로 삼는 문명이라든가 근대라든가 문화시민이라 하는 건 더럽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운 것을 가리는 삶을 추구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마치 위험한 적이 나타났을 때 모래속에 얼굴을 파묻는 타조처럼 말이다. 눈을 가린다고 더러움이 없어지지 않는다. 한국에 돌아가도 아주 오랫동안 삶의 구석구석에서 내가 생산하는 더러움을 마주하며 살리라 다짐하며 오늘 아침도 쾌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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