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찍 일어나 뚜얼슬랭 뮤지엄에 다녀왔다. 우리가 묵던 숙소 바로 옆에 하룻밤에 3$이나 저렴한 숙소가 있길래 냉큼 짐을 옮겨놓고(3$이면 우리가 사랑하는 과일 요거트가 3병이다..) 숙소를 나섰다. 아홉시가 약간 넘었을 듯.












































가깝지는 않은 거리였으나 걸어갈 만 하다고 생각했고 중간에 '럭키 슈퍼마켓'이라는 무려 론리에 나온 슈퍼마켓을 들러서 맛있는 마실 것들을 먹기로 했으니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
가는 길에 북한대사관앞이나 한번 보고가자고 했는데 저지대가 있고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왜 막냐고 했더니 경찰은 영어를 못하는지 안된다고만 계속 하는데 옆에 있던 뚝뚝기사가 훈센 총리집이 있다고 설명을 해준다.

어쨌든 알았다고 하고 길을 돌아서 대로쪽으로 가다보니 북한 대사관이 나온다. 훈센집에서 무지 가까운 핵심지역이다.


대사관 옆에는 인민의 자유와 안녕을 위해 헌신하신 위대하신 령도자 김일성 어버이에 대한 칭송이
영어를 잘 못하는 내게도 엄청 화려하다 싶을 정도로 서술돼있고 사진들이 나온다.
이걸 읽으면
"아, 김일성 대단하구나. 다시봤어 북한"
이런 반응이 나올까
"역시 북한이군. 전체주의 독재국가 아니랄까봐"
라는 반응이 나올까.
이 사람들도 그걸 알지만 보는 눈이 있으니 이렇게 서술을 해놓았겠지?

설명이 잘 돼있으니 읽어보시길!

중간에 들른 럭키 슈퍼마켓. 겁나 크고 다양한 품목이 있고 특히 저렴하지만 괜찮은 빵들이 있다.
반값세일중인 곡물우유와 두유, 그리고 베리믹스 요거트를 여기서 사서
가난한 배낭여행자의 영양을 보충했다.

여기서 다시 걸어가는데
수수가 엄청 힘들어했다.
왠일인지 엄청 자주 나왔던 바게트파는 노점상은 한참이나 나오지 않았고
그러다 뮤지엄 근처에서 하나 발견
인상이 푸근한 아주머니였는데
영어를 거의 못하셨다. 바게뜨 샌드위치가 5000리엘(1400원)이란것만 파악하고 일단 앉았다.
커피도 마시고 싶어서 한잔 달라고 했는데
잘못 알아듣고 맥주를 주신다.
다시 잘 말하니까 진하고 단 커피를 내오시는데 엄청 시원하고 맛있다.
1500리엘(400원)
식초에 절인 무와 당근도 접시에 덜어서 양념까지 얹어주신다.
바게뜨샌드위치는 따뜻한 바게뜨빵에 오이와 치즈 햄, 버터 고기등을 넣어주는데
아마도 프랑스식민지의 영향으로 이곳 사람들의 흔한 식사가 됐으리라

공짜 아이스 티까지 얻어마시고 다시 힘을 내서 박물관으로 향했다.

뚜얼 슬랭은 원래 학교였는데
폴 포트의 크메르 루즈 통치 당시, 그러니까 75년에서 79년까지
DK 정권에 반대하거나
반대세력인 크메르 공화국에 협조한 사람
그리고 부자, 교육받은 사람, 판사, 의사 등 엘리트들을
고문하고 조사하고 킬링필드라 불리는 죽음의 장소에 가기까지
가둬놓은 곳이다.
아우슈비츠하고 비견될 만한 곳으로써
규모면에서는 작겠지만 학살의 잔인성면에 있어서나
수용소를 나름대로 보존해 옛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도록 하는 점에선 비슷한 느낌을 줬다.
입장료는 일인당 2$, 보는데는 우리는 3시간 정도 걸렸다.
오전 9-10, 오후 2-3시에는 영화도 보여준다니 참고할 것.

들어가면 제일 먼저 발견 당시 발견된 시신들을 묻은 묘역이 있다. 여성 한명을 포함한 14명이라는데 아마도 급히 도망가면서
남은 수용자드을 죽이고 간듯.

학교를 개조해서 감옥으로 만들었다.
사실 많은 개조가 필요한건 아니다.
군대, 학교, 감옥은 비슷한 원리와 원칙으로
통제, 감시, 처벌등에 용이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일 듯

수용자들의 지침이 나와있다.
프랑스식 영어인건지 단어들이 엄청 어려웠는데
어찌됐던간에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고
어길시엔
채찍 열대나 전기충격 5회의 벌칙을 적용한다고 한다.

여긴 좀 급이 높은 수용자들을 넣어놓은 곳. 교실 한칸을 다 쓰고 있고
아주 빈약한 침대에 족쇄와 고문기구등이 놓여있다.
그리고 벽한편에는
발견 당시 시체의 사진이 걸려있어서
섬뜩한 기분을 만들어낸다.





모르고 보년 그저 낡은 폐교에 불과하다.
저 그네처럼 생긴곳은 딱 봐도 알 수 있지만
줄로 수용자들을 걸어서 끌어 올리는 식으로 고문을 하고
아래 보이는 장독에 거름을 넣어놓고 머리를 담구는 방식으로 고문을 한 곳이다.
그냥 맘에 안들거나 운이 없으면 구실을 만들어서 바로바로 죽이기도 하고
이 마당에 파묻기도 했다던데
저 시설물은 한 단면일 뿐일 듯.

다음 동에는 여기서 벌어졌던 일들과, 크메르 루주 정권 당시 있었던 일들에 대한 자료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다 영어로 설명 돼 있어서 읽느라 너무 피곤했고
중간중간, 막바지에는 거의 포기였음.

크메르 루주(붉은 크메르)가 프놈펜을 점령한 후
도시의 사람들을 대부분 지방으로 이동시켰다.
이는 폴포트의 뿌리깊은 반자본주의, 반도시주의, 그리고 농업중심의 이상때문이라고도 하고
당시의 도시에 팽배하던 식량문제에 대한 해결때문이라고도 한다.
또한 도시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이나 부유층등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듯.
사람들은 끊임없이 도망쳤는데
특히 베트남이나 태국 국경쪽으로 넘어가서 난민이 됐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태국국경쪽에 엄청난 지뢰를 묻었고
그 지뢰가 여전히 남아서 희생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한다.
캄보디아에 대해서 아마도 제일 유명한 영화일
킬링필드에서도
막바지에 지뢰를 밟아서 죽는 사람들이 나온다.
아마 며칠 후에 시엠립에 가서 지뢰박물관을 가볼 듯 한데
그때 좀 더 자세한 얘기를 알 수 있을 듯하다.
저 지도는
아우슈비츠에 가면 잘 그려져 있는
히틀러의 유대인 등 이송에 대한 설명을 담은 지도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면에서 뚜얼슬랭은 아우슈비츠를 떠올리게 한다.
“당신들을 살려두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당신들을 죽이는 것은 아무런 손실이 아니다”라는게
이곳 뚜얼슬랭 수용소의 표어였다는데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라는 아우슈비츠 입구의 슬로건이
오히려 세련되게 느껴질 정도이다.

희생자들의 사진이 엄청나게 전시돼 있다.
그중엔 적대세력, 그러니까 왕이나 미군등을 위해 일한 사람들이 있었고
지식인이나 엘리트, 부유층의 사람들도 있었는데
크메르 루주의 군인이거나 심지어는 수용소에서 죄수들을 감시하던 당원들도
서로가 서로를 고발하고 죽이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증오와 복수, 살인이 만연한 아수라장이었던 것 같다.
위의 사진은 그중에서도 크메르 루주 군인이었던 사람들중 죽은 사람들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사진만으로 군인이나 농민 크메르 루주이건 공화군이건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저 캄보디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순박한 사람들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자신의 수용번호를 걸고 사진에 찍힌 사람들.
이곳에 들어가면 무조건 죽는다 했다.

폴포트를 비롯한 당시 크메르 루주의 권력자들
이들에 대한 처벌이 30년동안 지연되고
그 사이에 이사람들이 죽거나 혹은 사면받아 잘 살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고
2007년에야 법정이 열렸고
아직 법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맨 밑의 사진이 훼손된 사람은
이 수용소의 책임자로
나치로 비교하자면 아이히만같은 사람이다.
폴포트가 몰락하자
이름도 바꾸고 신분도 숨긴채
미국 난민단체에서 일하면서
전도사,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2009년에
40년형을 선고받았다.

교실에선 이렇게 수용돼 있었다고,.상상이 가는가

아까 고문 장치를 이용하는 방법을 비롯한 갖가지 고문방식이 소개돼 있다.
총알을 아끼기 위해서도 그랬다는데
크메르 루주 학살의 잔인성은 그 양에서도 그렇지만
질적인 측면에서 나치를 넘어서는 듯하기도 하다.
홀로코스트 관련영화를 보면
정말 무심하게 총으로 픽픽 쏴서 죽이고
가스로 죽이고 하는데
이 전시를 보면 그 방식이 오히려 낫지 않냐는 이상한 생각이 든다.
죽이는데 낫고 못한게 있냐만 싶다만은
어쨌든 폴포트의 잔인성은
정치적으로 같은 편으로 구분됐던
중국이나 베트남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라고 한다.
후에는 미국이나 서구에서 폴포트를 오히려 지원하게 되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건 이 수용소에 수용됐던 사람들에 대한 인적 사항과
자신들에 대한 자아비판, 반성문등을 영어로 번역해놓은것이다.
위 사진은
여기 설명된 사람들이 진정한 크메르 공산주의자임을 보여주고 있는 보고서이다.

크메르어와 영어로 읽기 편하게 책처럼 만들어져 있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방식의 진술서들이 전시돼 있으니
시간여유가 되는 사람은 쭉 읽어봐도 좋을 듯.

이사람은 정부에 대한 불평을 했다가 잡혀온듯 한데 진술서엔 자기가 무식하고 몰랐고 정말 잘못했고 자기는 새사람이 됐고 뭐 이런 내용이 쭉 나오다가 더 쓸게 없고 자기는 살려주기만 하면 좋겠다. 밥을 좀 달라 뭐 이런 내용들이 나온다.
삼층에는 오키나와 평화박물관과의 교류 프로젝트의 일환인 전시가 돼있는데
앞선 일층의 전시에서 영어 설명이 좀 부족한 것과 달리
전시가 잘 돼있다.
동남아를 돌다보면 여기저기서 일본이 평화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는 듯한 전시관, 박물관, 조형물들이 많은데
좋은일이긴 하지만
하나같이 일본이 당한 피해 그러니까 원폭이나 오키나와 점령등에 대한 이야기만 나와서 조금 불편하게 만든다.
오키나와 관련 전시도
일본인들이 오키나와를 어떻게 점령했고 어떻게 복속시켰는지
일본이 어떻게 2차대전을 저지르고 전개해나갔고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얘기하지 않은채
미군의 폭격과 상륙부터 시작해서 전쟁의 비극얘기를 하니
뭔가 부당한 느낌이 드는 건 있다.
어쨌든 관련해서 여러 전시를 하고 있고
마지막에 일본 학생들이 그린 평화 포스터? 그림 같은게 있어서 예쁜거 몇개를 찍었다.

방명록이 꽤 흥미로웠는데
일단 한글로 된건 99% 하나님 얘기가 들어갔다.
아마도 단기선교를 왔다가
박물관 견학을 온 분들인 것 같은데
캄보디아에 있는 한국인들 중 선교사가 600명이나 된다는(2008년)
수치가 실감이 난다.

난 이게 한국인이 쓴 영어같은데
어쨌든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좋은데 왜 당신들 총리 집 옆에 북한대사관이 있냐"
이런 지적이었다.
물론 북한은 훈센보다는 그 전 국왕이랑 친했고(시하눅 국왕이 북한으로 망명했었다)
훈셴은 이명박이랑 더 친하고 박정희랑 더 비슷한 것 같지만..

Peace를 보면 왠지 찍게되는 이 직업병같은건 뭐지?

방명록 표지에 아니나다를까
일본이 저지른 일들이 있는데 왜 그게 없냐는 비난이 있었고
근데 거기에 댓글로
여기는 평화를 위한 곳이니 그런 얘기를 하지 맙시다
라고 돼있는데 거기 또 댓글로
여기서 그런 얘기를 해야지
하는 내용이 달려있었다.
뭔가 인터넷 문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단순히 추모하고 슬퍼하고 기도하고 하는 것이
절대 평화가 아니란 생각을 갖고 있고
모든 정권이나 세력들이 갖고 있는 양면성과
역사의 다양한 측면
그리고 비극들의 구조적인 원인들과 맥락들에 대한 설명
마지막으로 현재에 대한 어떤 적용이나 변화 없이는
평화도 소용없고 감동도 공허하다는 입장이다.

여긴 급이 낮은 죄수들이 갇혀있었던 곳.
교실에 벽돌이나 나무로 칸을 치고 사람들을 넣어놓았다. 무척 좁고 열악하다.

낡은 칠판 하나가
여기가 학교였음을 증언해주고 있다.
크메르 루즈는 지식인에 대한 경멸이 있었기에
교육을 아예 없애버렸다.
현재 정권에서도
대중 우민화 정책을 위해
교육에 대한 투자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하니
한국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캄보디아에 진출한 많은 NGO들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사회의 주역이 될 10-20년 후에 캄보디아는
꽤나 독특한 사회가 될 것 같다


이사람이 수용소의 관리 책임자.
20년간 숨어살다가
집요한 사진작가에 의해 발견됐고
증언을 하기 시작했고
2007년에 법정에 섰고
2009년에 40년형을 받았다.

수많은 유골들이 전시돼 있었는데 굳이 올릴 필요는 없을 것 같고, 크메르 루즈의 단 4년의 집권동안의 비극을 잘 보여주는 듯 하다.
인구의 20%가 죽었다고 한다.
물론 그 이전의 미군의 무차별한 폭격에 의한,
이후 복잡한 냉전 사이에서의 계속된 내전에 의한 희생자들도 잊어선 안될 것이다.
현재의 크메르 루주에 대한 전시나 논의는
그 정권의 잔인성을 부각시켜서
다른 정권들의 정당성을 세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언제나 옳고 선한 정권은 없고 그 반대도 없다.
폴포트 같은 괴물도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의 폭격과 식민지배에 대한 대중적인 반감과
프랑스 공산주의, 스탈린 공산주의, 마오의 문화혁명등에 영향을 받은 이상주의적 교리와
냉전이라는 틈바구니에서 주로 변두리에서 실제로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던 시대적 상황과
미국의 무책임한 개입,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추구하는 정치적 입장 등에 의한 합작품일 것이다.



크메르 루즈가 집권했던 데모크라틱 캄푸치아의 권력자들 사진이 많이 훼손돼 있다.
법에 의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데 대한 분노도 한 몫 했을 것.
아이러니컬한건
지식인에 대한 엄청난 적개심을 표현하고
지식인 말살 정책을 펼쳤던 이들은
대부분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프랑스 공산주의, 소련 공산주의등의 영향을 받은 엘리트였다는 점.
자기 스스로를 숙청하지는, 성찰하지는 못한듯.

수용자들이 자살하는 것을 막기위해 철망으로 학교를 씌워놧다,

장소가 학교이다보니
자꾸 학교와 감옥을 비교하게 됐는데
물론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기본적인 구조자체는 많이 다르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학교는 감옥이다라는 표어도 생각나고
이 철망을 보면서
학생 자살을 막기위해 창살을 만들어놓는 대책이란게 생각났다.
자살할 이유를 주고, 기껏해야 철망이라니.
뚜얼 슬렝은 학교의 감옥화에 대한 좋은 비유가 될 것 같다.
너무 극단적일 수도 있지만



몇몇 생존자가 출구쪽에서 자신들이 나온 잡지나 자신들의 이야기가 서술된 책들 팔면서 " 제가 이 박물관에 전시된 사람이에요", "제가 그 생존자입니다" 하면서 포즈를 잡아주고 슬픈 표정을 짓기도 하면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체험을 공유하고 알린다는 좋은 해석일수도 있겠지만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사람들이 진술을 거부하고 침묵하거나
많은 경우 자살하기도 하는 것이 생각이 나서,
또 내가 아는 몇몇 사람들이 수감됐던 감옥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했던 것도 생각이 나서
이들은 자신들이 수용됐던 곳에 와서 장사를 하고 싶은 것인가.
무덤덤한 것인가
그정도로 생계가 곤란한 것인가.
상처와 비참했던 과거를 파는 것인가
내가 그들을 비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안타까워조차 할 수 있을까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체험을 공유하고 알린다는 좋은 해석일수도 있겠지만
아우슈비츠에 수용된 사람들이 진술을 거부하고 침묵하거나
많은 경우 자살하기도 하는 것이 생각이 나서,
또 내가 아는 몇몇 사람들이 수감됐던 감옥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아했던 것도 생각이 나서
이들은 자신들이 수용됐던 곳에 와서 장사를 하고 싶은 것인가.
무덤덤한 것인가
그정도로 생계가 곤란한 것인가.
상처와 비참했던 과거를 파는 것인가
내가 그들을 비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안타까워조차 할 수 있을까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뚜얼 슬렝에 대해서는
느낀바도 좀 있고
여러 글들을 읽어보면서
좀더 자세하게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일단은 오늘 보고 온것들을
간단하게 포스팅 해놓고
캄보디아를 떠날 때 쯤
좀더 생각을 담아 써보고 싶다.
어쨌든간에
이곳을 가게 되면
(나 자신도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슬픔을 소비하거나
그저 감동을 받고 오는 장소가 아닌
역사속의 한 괴물로서 아, 그렇구나 정도가 아닌
좀더 현재와 연결된 관점을 갖고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나또한 좀 더 알고 싶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 또 하나는
아우슈비츠를 갔던게 6년전인데
그때는 적잖이 충격을 받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만 생각을 다하며
마침 내리는 빗줄기를 보면서 슬퍼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참 무덤덤한 나를 보면서
많이 무뎌졋구나, 많이 차가워졌구나 하는
약간은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아 그리고
막판에 전시된 크메르 루주의 의상이라든가
당시 상황에 대한 전시는
영화 킬링필드에 나온것과 거의 같기 때문에
영화를 한번 보는게 도움이 될 듯.
영어로 세시간동안 전시보느라 너무 힘들었음.


덧글
2013/05/05 20:40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