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09 00:16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를 샀고 sapiens를 샀고 호모데우스를 샀고 homodeus를 샀고 호모데우스를 또 샀다. 이번엔 진드감치 읽어보고 싶다. 

2016/07/18 00:01

유서준비

얼마 전에 ㅅㅅ에게 편지를 썼고, 답은 없다. 그 이후에는 ㅈㅇ에게 마무리 인사를 했다. 
그 이후에는 이제 머릿속에 유서,,라고 해야 할만한 내용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일부러 기록하지 않고 있다. 
ㅅㅅ에게 미련같은것을 가지지 않는다. 다만 그에게 나쁜 인간으로, 혐오스런 인간으로 남고 싶지 않다. 그것이 가치관이 무너진 내가 최후에 추구하는 어떤 존엄이 아닐까. 나는 그가 나와 연락을 끊은것을 이해할 수 없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많은 것들이 궁금하고, 많은 것들이 아쉽지만 이것이 더 삶을 지속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죽으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나, 끝나겠지. 남은 자들의 몫으로 남겠지. 이런것들을 붙잡고 살아가는게 너무나 힘겹고 피로하다. 유서를 쓰는 것은 매우 피로한 일임에 틀림없으나, 아마도 그것은 쓰고 떠나야 할 것 같다. 다 괜찮은데, 부모와 내 동생이 안타깝다. 평생 마음의 짐으로 안고 살아가겠지. 인생이 원래 그러한 것이지. 나는 벌써 감당이 안돼 떠나는 것이고... 

2016/06/21 14:21

누나

누나는 일곱살에 죽었다. 그 때 나는 여섯살이었다. 요새 누나 생각이 많이 난다. 어디서부터 내 기억이고 어디서부터 만들어지고 전해듣고 가공된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태어날 때부터 어떠한 의료상의 사고로 인해 장애를 가졌다고 했다. 제대로 걷거나 말할 수 없었고, 툭하면 병원에 입원했어야 한다고 했다. 누나의 병원 때문에 어려운 형편에 자동차를 샀다고 들었다. 누나가 병원을 오갈 때 탔을 그 차를 타고 난 여행을 다녔지만 말이다.

말할 수 없었고, 제대로 일어설 수도 없었고, 그렇기에 아마도 어느 누구에게도 죄를 짓지 못했을 누나는 아마도 무고한 영혼이었을것이다. 7년동안 고통스러워했을테고 어떠한 희망이나 즐거움 없이, 성장 없이 그렇게 살다간 누나의 삶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삶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마주한 현실이었을 것이고, 여섯살이 되기까지 언제나 내 곁에 있는 현실이었겠지만, 그리고 내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테지만, 거의 기억나지 않는 안개같은 시절로 떠오른다.

누나를 떠올리며 나는 내 부모도 함께 떠올린다. 이십대 중반의 신혼부부였던 그들에게 누나의 탄생은 얼마나 축복이었을것이며,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된 어떤,,,,, 고난은 그들에게 어떠한 괴로움이었을 것이고, 누나의 죽음은 그들에게 무엇이었을까. 자그마치 칠년의 세월동안, 어떠한 기분으로 그들은 살았을까. 건강했고, 튼튼했고, 강하고 똑똑해 보이는, 그래야만 했던, 철없는 둘째를 보면서 아마도 버텼을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내가 너무도 밉다.

내 부모는 장남이며 장녀다. 그들에겐 터놓고 의지할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요새 할머니와 같이 살며 느끼는 것이지만, 아마도 우리 부모에게는 그들의 부모가 별다른 심정적 도움이 됐을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상처를 더했을거라고, 난 요새 내 할머니를 마주하며 생각하곤 한다. 우리 부모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어떻게 그 세월을 견뎠을까.

아버지는 나와 내동생을 대학에 보낸 후에,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을 공부하셔서 목사가 되셨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어느 섬에 가셔서 묵묵히 사역을 하시고 계신다. 지난 설에, 아버지는 어떠한 의미와 즐거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가 내가 물었을 때, 아버지는 세상에는 미련이 없다고 답했다. 그것이 얼마만큼의 진심인지는 내가 알 턱이 없겠지만, 나는 그러한 부모의 삶이 너무도 이해가 될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다. 그들에게는 신밖에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커서 이런 저런 책으로 심리학등을 접하면서 나는 6세까지의 삶이 나라는 인간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다. 물론 6이라는것은 숫자에 불과하겠지만, 내 인생을 생각할 때 누나의 삶은, 누나의 곁에서 보낸 6년의 인생의 첫 시간은, 결코 생략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은 나의 기억 이면에, 의식 아래에 자리잡고 있겠지만 말이다.

그 시절의 난 누나가 입원할 때마다 여기저기 친척집에 맡겨졌다고 한다. 안 그래도 집안의 장손이었던 나는 덕분에 친척들의 관심을 두루 받으며 자랐다. 부모에게서 아마도 조금은 적게 받았을, 관심과 애정을 말이다. 내 부모는 내게 관심과 사랑을 듬뿍 주려고 노력했지만, 그리고 나는 그들의 노력과 정성이 지금 돌아보면 너무도 대단하게 느껴지지만, 아마도 어린시절의 나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한다. 누나가 죽고 일년 뒤 태어난 여동생은 어릴때부터 약했고, 툭하면 입원하거나 다쳤기에, 아마도 나는 또 부모의 관심을 뺏겼다고 느꼈을 것 같다.

엄마를 떠올리면 나는 언제나 누나의 기일무렵이 되면 지독한 우울에 빠졌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당연한 슬픔이었고 애도와 공감이 필요했겠으나, 엄마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그 곁에서 나는 왠지 모를 불쾌감에 엄마에게 짜증을 내거나 심지어 화를 내거나 했었다. 어느정도 머리가 굵고 나서는 엄마를 어설프게 위로하거나 심지어 훈계하기도 했었다. 그런 기억을 묻어두었었는데, 감옥에서 그러한 내 과거가 다 떠올라 뒤늦게 혼자 엉엉 울었다. 아버지는 내 기억에선 무심한 사람이었는데, 아버지의 엄마인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그의 성장과정을 이해하면서, 또 그시절 가장으로서 묵묵하게 견뎠을 그를 생각하면서 아버지의 무심함 또한 그의 어떤 자기보호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나는 그 후의 20년이 넘는 내 삶을 돌아보면서, 가급적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하고, 항상 어떤 말장난이나 튀는 생각으로 기분을 좋게 만들고 싶어했던 내가 어떤 면에선 애정결핍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또 내가 많이 좋아했고 영향을 받았던 여성들은 다들 남동생이 있는 사람이었고, 내겐 누나의 결핍이 그만큼 컸던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대체로 밝고 친절한 모습으로 친구들에게 기억되지만 아마도 그 이면엔 언제나 깊은 우울과 죽음에 대한, 혹은 버림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와는 다른 조건을 가진, 작고 약한 여성에 대한 혹은 약자에 대한 어떤 관심이나 호감 또한, 그리고 그런 것들로 인해 바뀐, 혹은 바뀐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러한 쪽으로 흘렀던 내 삶 또한 그런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친구들은 언제나 날 보며 놀라곤 했다. 내일이 시험인데도, 혹은 취업할 나이이고, 대학원에 갈 나이이고, 즉 미래를 위해 뭔가 노력해야 할 시점에 난 언제나 당장 하고 싶은걸 하고 싶어했고, 했다. 나는 언제나 안정된 먼 미래보다는 당장의 기쁨과 의미를 좇았던 것 같다. 이것을 모두 누나와 연관된 것이라 돌리기엔 과도한 합리화일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나는 그랬다.

어릴 때부터 내겐 언제나 죽음이 곁에 있었다. 인생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이었고, 먼 미래는, 내게는 멀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게 내일이 없을것처럼 하루살이로 살아왔던 나였는데, 그렇게 살기에 30년은 너무 벅찼던 것 같다. 오래 준비하고 노력해서 꾸준히 뭔가를 하고 아주 오랫동안 노력한 결과를 맛보고 천천히 누리기에는, 나는 너무 짧은 호흡으로 살아왔고, 그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다. 이런 내가 변할 수 있을까, 절망과 함께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7년밖에 살지 못했던 누나의 삶을 떠올리면, 서른이면 너무도 과분하게, 누나가 겪어보지 못했을 것들을 너무도 많이 누리고 살아온 내 삶이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막상 닥쳐온 끝 앞에서는 의연하지 못한,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날 보면서 복잡한 심정이 된다.

다시, 또, 종종, 인생의 시작지점으로 되돌아가 누나의 삶과, 부모의 삶과, 내 삶을 처음부터 되돌려본다. 언제쯤이면 이 모든게 받아들여질까, 상실과 끝 앞에서 의연해질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이만하면 많이 살았는데도 아직 어렵다.


2016/06/19 19:15

이제, 일년.

작년 2,3월쯤부터였을 것이다. 구정 즈음에 내가 너무 우울해지는 것 같아서 스스로가 걱정되어 좀 쉽고 즐거운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던 것이 기억나고 그 약효가 별로 지속되지 않았던게 기억나는 것으로 봐서 말이다. 아마 3월쯤 부터는 걷잡을 수 없는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는데, 서서히 먹을 것을 줄여나가기 시작한게 아마도 돌아보면 결정적인 하강기였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곡기를 끊어야겠다! 하고 끊은건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먹는게 하나하나 관찰되었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건 먹을 가치가 없게 느껴졌다. 내가 군것질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느끼고 구치소에서 먹을 수 있는 온갖 간식에 손을 안대기 시작했다. 하루에 세끼는 너무 많은 것 같았고, 먹는 밥의 양을 줄이기 시작했다. 우울감과 무력감에 빠져 몸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그 때 내 생각으로는 탄수화물섭취를 줄여야 한다고 느껴졌다. 백미가 거북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배식때마다 밥을 받지 않았다.(지금도 백미는 거의 안먹는다) 아마 거의 한두달 정도는 쌀을 거의 먹지 않았던 것 같다. 음식에 들어가는 양념이 다 과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배식을 받으면 반찬을 다 물에 씻어 먹었다. 소화가 점점 안되고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았고 먹는 양은 점점 줄었다. 그럴 수록 움직임은 줄었고, 악순환이 시작됐다. 어느 순간 내가 하루에 먹는 양은 아주 적어졌는데, 나름대로 그 때는 그 과정과정이 '합리적'이거나 당연한 것으로 스스로 느꼈고 적게 먹는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나중에 심리학쪽 책을 읽어보면서 그 당시의 내가 자기혐오나 자기학대로 인한 일종의 거식증 증상이었다고 느껴졌다. 돌이키면 뼈아프다.

매주 몸무게를 측정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내가 기억하던 몸무게에서 8키로 가량이 빠졌다. 매일 보는 아저씨들이 내 얼굴이 반쪽이 됐다고 했다. 그 때부터였다. 진작부터 아파오던 목과 어깨는 물론이고 허리와 팔꿈치 손목, 무릎, 발목까지, 온몸의 관절이 아프기 시작하고, 뚝뚝 소리가 났다. 그 전까지 건강하던 것도 아니었다. 긴 겨울을 바닥만 따뜻한 방에서 거의 앉아서 나면서, 나는 목, 어깨 ,허리가 결리고 쑤시는 것은 물론이고, 전립선 쪽의 통증으로 이미 몇 달간 의무과를 들락날락하며 진통제와 항생제를 먹던 상태였다. 우울과 무기력으로 한동안 운동도 거의 안하고 앉아있었으니 장이나 위 상태도 좋을리 만무했다. 나는 어릴때부터 장이 안좋았는지 스트레스를 받으면 혈변을 보곤 하는데, 그 당시에 한동안 혈변으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던지라 급작스런 체중감소와 통증을 동반한 관절 이상이 시작됐을때, 나는 암에 걸렸다는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병원에 갈 수는 없었다.

젊은 애가 살이 빠졌으니, 주변의 친하게 지내던 아저씨들이 내게 열심히 먹을것을 줬다. 그것은 과자거나 라면이거나 빵 같은 것들이거나 혹은 배식에서 나오는 음식들을 다양하게 변형한 것들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받는 족족 변기통에 버렸다. 당시 내게 입에 들어가는 것들은 대부분 쓰레기처럼 느껴졌고,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준 사람들이 대번에 알 수 있으니 변기에 버렸다. 통큰 아저씨들은 과자도 몇박스씩, 빵도 십 수개씩 줬기에 변기가 자꾸 막혀서, 나는 음식들을 찢어서 버리거나 씹어서 버렸다. (어떤 이는 음식을 아깝게 왜 버리냐고, 필요한 사람에게 줄수 없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겟지만, 당시 내가 있던 사동에는 대부분 범털들이 있었어서 음식을 필요로 하거나 내가 준 걸 받을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 준 빵이나 라면같은 것을 일일이 씹어서 변기통에 뱉으면서 죄책감과, 음식에 대한 혐오감과,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과, 내가 처한 상황의 비참함에 울기도 하고 이유를 알 수 없이 치밀어오르는 화를 삭히며 보냈던 순간들은 내게 여전히 선명하고, 떠올리면 아직도 처참한 기분이다.

살이 다시 쪄야 하는 것은 명백할터인데, 목으로 음식이 넘어가도록 날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못하니 괴롭기 짝이 없었다. 나는 한평생 체중과 식욕이 많은 편에 속했고, 그래서 식욕이 사라진다는 것, 살이 빠져서 몸에 안좋을 수 있다는 것은 모두 내게 당혹스럽게 다가왔다. 감옥에 있을 때도 그랬었는데, 누군가 뭐가 맛있다고 좋아하거나, 내게 권하면 까닭을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곤 했다. 그러면 더더욱 먹히지 않게 되는데, 그럴때마다 미안하면서도 괴롭다.

당시 몇 달은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우울감과 좌절감, 냉소와 허무함속에서 지냈고, 그 와중에서도 항상 감시받고 있으며 재판이 언제 끝날지, 언제 이감을 가야 할지 몰라 하루하루 긴장한 상태로 지냈으며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학대를 하며 또 하루하루 심해지는 통증과 몸의 이상증상에 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에 짓눌리며 지냈다. 그 때 난 어마어마하게 예민했고 신경질적이었으며 충동적이었고, 그러한 상태로 내가 느끼는 우울과 좌절과 냉소와 허무와 긴장과 공포와 불안과 분노와 절규를 애인에게 쏟아냈다. 지금 여기 적은 것들보다 훨씬 더 추했고, 더 비참했으며 더 길었고, 덜 정돈됐으며 더 거친 글들이 매일매일 손글씨로 반복됐다. 거기에는 상당한 분량의 언어폭력이 동반됐고, 아마 그 편지를 받는 사람 또한 무력감과 긴장감과 불안과 분노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 사람은 결국 작년 이맘 때쯤 날 떠났다. 그것으로서 내가 가장 신뢰하던 사람에게서 신뢰를 잃었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미미하게나마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나는 여전히 당시의 내가 이해되지도, 받아들여지지도, 인정되지도, 납득되지도, 용서되지도 화해되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부끄럽고 추하며, 꾸짖게 되고, 한심하게 느껴지고, 후회스럽고 밉다. 스스로가 그러한데, 애인이든 누구든 누가 날 이해하고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리고 스스로 용서받지 못하고 있는데, 누가 위로해준들, 그것이 위로될 수 있을까. 비난과 조롱은 물론이겠지만, 섣부른 위로가 날 더 괴롭게 만드는 것을 느낄 때마다, 점점 말의 쓸모를 잃는다. 아마 이것은 죽는날까지 내가 혼자 지고 가야 할 짐일것인데, 너무도 버겁게 느껴진다.

일년이 넘게 지났다. 여전히 내게 식욕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 함께 먹을 때 종종 기쁘게 열심히 먹으려 하지만 혼자가 되면 다시 또 음식들이 쓰레기처럼 보인다. 살 의지는 없는데, 죽을 용기도 없어서, 몇 달간 꾸역꾸역 열심히 먹었다. 꾸역꾸역 먹으면 체중은 조금 늘었는데, 그렇다고 통증이 사라지진 않고, 그러다 다시 먹을 의지를 잃으면 다시 체중은 줄기 시작한다. 소화력은 점점 떨어지고, 그래도 먹긴 해야 하니까 뭔가 들어갈 수 있을 땐 항상 입으로 뭔가 넣으려고 하니, 항상 체한 기분으로 살고 있다. 먹기 싫은걸 먹으면 더 소화가 안되고 심하면 두통이나 복통으로 하루이틀 괴로워하니, 그래도 조금이나마 덜 싫은걸 먹으려고 노력한다. 먹고 사는게 힘들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식욕을 억제하지 못해 괴로워하는데, 나는 대체 왜 이러고 있나 생각하면 여러가지 복합적으로 괴롭다.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통증은 계속 심해진다. 나름대로 몸에 최선을 다하려고 하는데 통증이 왜 심해지는지, 어떻게 하면 좋아지는지 알 수 없는데, 하루를 보내고 누워서 어제보다 더 심해진 통증을 느끼면, 아침에 일어나 여지없이 찾아오는 통증을 느끼면 좌절감에 죽음을 생각한다. 젊으니까 좋아질거야, 쉬면 좋아질거야..라는 말에 희망을 걸었던 것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죽을 것을 생각하면 물밀듯이 밀려오는 회한과 막연한 두려움 허무함에, 차마 죽지 못하고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고 있다. 하지만 지난 1년 3-4개월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찾아오는 통증과,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도 꾸준히 안좋아지는 몸을 생각하면, 내게 다시 건강한 삶은 오지 않을 거라는 좌절이 나를 엄습한다. 도대체 왜 계속 몸이 나빠지는지 억울함과 두려움에 대상이 없는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무엇을 하든 몸이 아파오니, 미약한 즐거움과 기쁨을 느낄일도, 즐겁지 않더라도 그냥 할 수 있는 일들도 점점 줄어간다.

지난 1년도 내겐 너무나도 괴로운 시간이었고, 지난 1년간 너무나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고, 제일 중요하게는 살아야 할 이유를 잃었다. 앞으로의 며칠도 깝깝하다. 그런데 또 다른 1년, 앞으로의 수 년, 혹은 남은 십수년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혹은 점점 더 나빠지며, 점점 더 많은 사람을 잃으며(잃을 사람도 거의 남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점점 더 사람들에게 함부로 하며 괴롭히고, 추한 모습을 내보이며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감옥을 나올 때만 하더라도 부끄럽게 생각된 내 지난 삶을 늬우치고 만회하며, 갚으며 살고 싶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7-8개월이 지났지만 만회하기는 커녕 부끄러운 일들, 갚을 일들, 괴로운 일들이 점점 더 늘어간다. 그나마 약간이라도 좋은 모습으로 기억될 수도 있었을 과거마저 다 무너트리고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그나마 좀 더 덜 추접하게 죽는 준비를 하는게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까 생각하며 몇 시간씩 생각하다 잠이 들면, 악몽과 통증에 잠을 깬다. 그러한 일상이 반복된다. 아, 이게 사는건가.

작년 6월 이맘 때, 모든 것이 산산히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 멍한 눈빛으로 옥죄여 오는 불안을 못견디며, 편지로 이별을 통보받으면서도 이 모든게 꿈이길 바라며 지내던 내 모습이 어른거린다. 그때의 내게, 지금 네게 일어난 것은 모두 현실이며 앞으로도 쭉, 건강도/의욕도/관계도/우울증도, 그 어떤 것도 좋아지지 않고, 나빠질 일만 남았다고 말해준다면, 그 때 난 감히 살려고 했을까? 일년후의 나는 지금의 나를 또 어떻게 돌아볼까. 이대로 가면 끝이 어디일지 너무도 뻔해서, 하지만 언제일지는 모르겠어서, 두렵다.

2014/11/18 00:12

병역거부 관련 소식

병역거부 관련 소식을 위해서 까페가 생겼습니다. 
저와 병역거부에 대한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공간입니다.


5월 28일 선고공판때 아마도 법정구속되어 1년 반정도 수감생활을 할 것 같습니다. 
그 기간중 블로그는 쉽니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http://hr-oreum.net/article.php?id=2701
이 글을 시작으로 한달에 한번정도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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